초대교회에서는 3가지의 방법으로 기도했습니다.

I. 시편기도
II. 말씀으로 하는 기도
III. 수건을 벗은 기도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 자유롭게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I. 시편기도

초대교회에서는 시편은 “기도의 영감으로 된 책”으로 신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공급하신 매일의 양식인 만나의 이름을 따라 시편을 “영의 만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적으로 심지어 영적으로 그들을 지속시켜준 같은 음식을 매일 먹었을 때는 광야에서 한번도 전투에 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 또한 영적인 만나를 매일 먹어야 합니다”  

잘 알려진 역사가 필로(Philo)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서 시편으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또한 사도행전에서도 사도의 시대 동안에 이런 관례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사도행전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사도행전10: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3) 사도행전10: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이것은 초대교회가 사도들로부터 배워서 알고 있었던 일종의 예배의식적 기도(Liturgical prayer)입니다.

그러면 liturgical prayer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전통 교회들에서 행해졌던 예배의식(liturgies)으로서 매주 주일에 반복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식적 기도(liturgical prayer)의 성경적 근거들은 무엇인가요?

요한계시록으로 가보겠습니다.
계시록7: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시록11: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 계시록은 천국 예배의 모습(천사들의 예배)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 천국의 예배는 항상 찬양하며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 히브리서1:14 :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Liturgia)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Diakonia) 보내심이 아니냐” 이 말씀을 통해 천사들의 두 가지 섬김을 볼 수 있습니다.
  1. 리트로지아 (헬라원어: Liturgia) à 하나님을 위해
    b. 디아코니아 (헬라원어: Diakonia) à 사람을 위해

* 헬라어에 따르면 첫 번째 섬김인 리트로지아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섬김입니다. 원어사전(Lexicons)에 따르면 이는 변함이 없는 말, 즉 같은 단어를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말들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삼상16:7)

* 반면에 두 번째 단어, 디아코니아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천사들을 보내서 사람들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변화가 가능한 말을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 메시지의 종류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말이 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초대 교회는 이 의미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예배를 천사들의 예배처럼 드리는 것을 너무도 좋아했습니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à 주기도문)

  • 초대교회에서는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했습니다. 시편으로 찬양하면서 천사들처럼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며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 또한 이것이 옛 전통 교회들에서 매주 마다 변하지 않는 동일한 단어들로 드리는 예배의식들(Liturgies)이 나오게 된 배경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 아들, 성령님에 대한 믿음을 전달했습니다.

Note:

1) 이집트에서는 4세기까지 주요한 두 그룹의 예배자들이 있었습니다. 홀로 예배의 삶을 살기 위해 사막으로 나갔던 수백명의 예배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그룹으로 모였습니다.

  1. 북부의 Wadi Natroun그룹
    이들은 성경으로 기도하는 것에 더하여 150편의 시편으로 매일 기도했습니다. 일상의 일(생활을 위해 공예품을 만들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들)을 하는 동안에 금식하면서 이런 규칙적 기도를 했습니다.
  2. 남부의 St. Pakhoum 그룹
    천사가 그의 공동체(초신자들, 이교도에서 개종한 사람들)를 위한 지침서를 전달했던 계시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는 아그비아(Agpeya: 콥틱 언어로 ‘book of hours’라는 뜻“)책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콥틱교회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2) 따라서 초대교회의 예배자들은 시편 전체(150편)을 매일 기도하던지 아니면 75편의 시편을 시간을 나누어 기도하던지 했습니다.

그들은 시편 119:64의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는 구절에 따라서 7번의 시간으로 나누어서 기도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109:4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I give myself to prayer” (NKJV) or “I am a man of prayer”(NIV)]
히브리 원어로 이 말은 “내가 기도이다(I am a prayer)”라는 의미입니다. 시편이 기도하는 다윗 그 자체가 된것입니다.

누가복음 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7에서 “쉬지말고 기도하라” 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예배자들이 구원의 사건을 상기하도록 배열되었습니다.

  • 제1시 기도 (6 am):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 제 3시 기도(9 am): 성령의 부으심
    성령 안에서 걷기 위해 새로운 기름 부으심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 제 6시 기도(12pm): 십자가
    하루 동안 우리를 방해하는 정욕들을 죽이기 위해 십자가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 제 9시 기도(3pm): 승리의 시간
    예수님은 그분의 일을 다 마치셨습니다. 우리도 하루의 주어진 일들을 완성합니다.
  • 제11시 기도(5pm): 십자가에서 내려져 예수님의 몸이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여짐 하루의 일들을 마무리하고 휴식합니다.
  • 제 12시 기도(6pm): 무덤에 누우심

우리 삶의 마지막(때로는 ‘작은 죽음’이라고 불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대개 그들은 못 박히신 예수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십자가를 손에 쥐고 입맞추며 계속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시편 기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시편기도의 유익

  1. 분열 전 그리스도의 생각을 대표하는 초대교회 리더들의 합의에 대한 순종입니다. 시편기도는 AD 325 니케아(Nicea) 공의회의 규범 조항 중 하나로 매우 잘 기록되어 있는데 모든 교회의 리더들이 모든 믿는자들에게 매일 시편으로 기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리치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시편기도는 거의 16세기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시편기도를 하는것은 초대교회의 생각에 합의하여 하나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2. 하지만 시편기도는 도구이며 목적이 아님을 염두해야 합니다.
  3. 시편기도는 모든 육적인 활동과 관련된 생각들을 정결하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규칙적으로 하다보면 생각이 고요해지는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4. 하루 동안에 묻어온 세상의 먼지로부터 혼(soul)을 정결하게 합니다.
  5. 영을 활성화시켜 개인적 기도를 할 수 있게 합니다. 시편기도의 도움으로 이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대화할 준비가 되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과 섞이거나 더럽혀지지 않은 예언적 인상들을 받게 됩니다.
  6. 믿는 자들이 매일 매일 구속의 역사와 연결되도록 돕습니다. (정해진 기도 시간의 규칙에 따라서)
  7.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에 채우는 것이므로 3가지의 영적인 활동들을 모두 이루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의 말씀과 경배!

II. 말씀으로 기도 혹은 말씀기도

그들은 말씀을 기도하듯이 읽었습니다. 구절들을 읽고 그리고 다시 여러 번 반복하여 읽었습니다. 말씀이 속사람 안으로 들어가 다양한 활동들이 풀어지도록 구절들을 되새김질 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말씀을 되새김질하며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가장 근본이 되는 방법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런식으로 성경을 읽을때 그들은 성경의 책들이 다음과 같은 기름 부으심으로 풀어진다고 확신했습니다.

  • 예언서는 예언적 기름 부으심을 풀어낸다
  • 복음서는 사도적 기름 부으심을 풀어낸다
  • 역사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풀리게 하며 그분의 길들을 알려준다
  • 시적인 책들(특히 아가서)은 신부의 사랑을 풀어주고 하나님의 지혜 또한 알려준다

그렇다면, 말씀을 되새김질해서 먹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모두 알고있는 시편23편 1절을 예로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23:1)

이 구절을 가지고 기도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성경구절 자체가 기도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으므로 이 구절에 내 자신의 말을 첨가하지 않고 계속 반복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식으로 이 구절을 반복하는 것이 되새김질하며 먹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큰 목소리로 기도하듯이 조용히 반복하는 것입니다. (quietly prayerfully with loud voice)
큰 목소리라고 했는데 사실 예배자에게 있어서 큰 목소리로 기도한다는 의미는 지금의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다릅니다. 많은 경우 그들은 침묵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예배자인 그들에게 큰 목소리로 기도한다는 뜻은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어서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 구절을 되새김질하며 기도한다는 의미는 다음의 두 단계를 함께 병합하는 것입니다.

  • 첫번째 단계: 내 자신의 말을 첨가하지 않고 말씀 구절이나 구절의 단어를 있는 그대로 반복하며 소리내어 기도합니다. 이렇게 할때 말씀이 내 속사람 안으로 깊어 들어가게 됩니다.
  • 두번째 단계: 그 다음에는 소리내어 반복했던 말씀구절을 멈추고 침묵 가운데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고 조용히 내 마음(heart) 속에서 구절을 반복합니다.

이 두단계를 함께 반복하며 기도할때 그 말씀에 깊이 깊이 들어가게 되고 새로운 것들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다른 활동들이 내 안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정결(cleansing), 예언적 인상(prophetic impression), 빛(illumination), 확신(conviction), 사랑(love) 등 입니다.


III.
수건을 벗은 기도

이 용어는 고린도후서3:18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러분은 기도하실때 이 구절의 첫번째 부분의 말씀처럼 주님의 영광을 봅니까?
여러분은 기도를 마친 후에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었다고 느낍니까?
왜 우리에게는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걸까요?
만약 1년 동안 기도한 후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다면 그사람이 나에게서 보이는 하나님의 영광때문에 내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될까요? 이런 변화는 매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어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조금씩 자라면서 보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일년 후에는 서로를 보며 우리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하나님은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나의 이런 변화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고 찔림을 받아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있어야할 이런 변화가 왜 우리 삶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여전히 우리 얼굴이 수건으로 덮여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수건으로 덮여있는 것입니다. 이 수건은 타락으로 인한 결과이며 이 수건으로 인해 모든것이 희미해지고 가리워져 버렸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말마 뱉었을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말씀 안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반응하지 않는것입니다.

어떻게 이 수건을 찢어서 벗을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시편기도의 놀라운 유익입니다. 초대교회는 시편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를 하기 위한 준비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편기도는 반드시 해야하는데 왜냐하면 시편기도를 하지 않으면 수건을 덮고 기도하게 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수건을 덮은채로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높이지 못합니다. 시편기도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시편기도에는 정결의 능력과 덮인 수건을 찢는 능력이 있습니다. 희미하고 어두운 것들을 거둬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과 육의 활동으로 인해 다시 희미해질수 있지만 시편기도를 통해 다시 정결하게 되고 어느 시간의 때가 되면 그 수건이 찢어지게 됩니다.
시편기도와 말씀을 되씹으며 기도할때 수건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할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성령님 안에 있게되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그분과 열린 상태에서 자유롭고 친밀하게 대화하게 됩니다. 이런 대화의 교제로 인해 우리는 그분의 인도하심과 음성, 그리고 우리의 삶에 주시기를 원하는 것들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으므로 받을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정말 하나님과의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기도

예수기도는 누가복음 18:13에 근거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이 기도는 단순히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예수기도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 들었었는데, 그 의견인즉, “예수님의 은혜를 많이 구하는데 구원을 통해서 그분의 은혜를 이미 받지 않았습니까?” 하는 것이였습니다.

이런 오해는 성경말씀에 나타난 긍휼에 대한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이해때문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구하는 긍휼은 예수님처럼 성화되고 변화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구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자신의 내면의 속사람의 삶에 대해서 완전히 눈이 먼 경우에는 왜 이런 같은 기도를 반복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속사람에 대해 알고 타락으로 인한 내면의 결과들을 이해하게 된다면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구원을 이루어야(빌2:12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함을 깨닫게 됩니다. 받은 은혜를 가지고 이루어가므로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초대교회의 글들에서는 기도에 대해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도야 말로 기도를 더 배우게 하고 더 기도하게 도와주는 완벽한 스승이다”
“기도는 성령의 진정한 충만을 받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