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녜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역개상28: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예레미야17: 9, 10)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잠언 23: 26)

오늘 우리의 메시지는 “마음”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음(heart)을 살피신다는 사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늘 사람의 마음을 향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타락한 인간 마음의 본질이 기만적(부정직)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교활함과 비뚤어진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솔직하지 않으며 곧지 않습니다. 기록된 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능히 이를 알리요

인간의 타락한 본성 가운데 최악의 것은 거짓되고 사악하며 비뚤어진 마음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우리는 이 기초 중 하나인 ‘대가’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 은혜를 위해 우리 내면의 공간(장소)을 준비해야 한다고 나누었습니다. 이 공간(장소)을 준비하기 위해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은혜 혹은 선물을 위한 내면의 공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대가를 치르는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내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교회에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것에 대한 참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장하거나 앞으로 전진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이렇게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른다는 것은 내가 기도 할 때마다 또는 하나님과 교제/교통 할 때마다 은혜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은혜는 내가 기도 할 때, 성경을 읽을 때, 신성한 신비들을 받거나 사역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때 올 수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열리고 마음 가운데 은혜를 받는것을 알게 됩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 얼마 후에, 내가 변화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 옛사람의 일부 특성들과 일부 죄들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그리스도의 새로운 성품들, 즉 새 사람의 성품들이 내 삶에 나타나고 그것들이 성장하고 확립되는 것은 경험하게 됩니다.

내 삶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이런 나 자신을 보면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나의 어떤 죄를 없애기를 갈망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성한 성품들을 받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그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로인해 하나님은 내 삶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말로 영광 받지 않으시며 우리의 진정한 변화를 사람들이 보게될때 영광 받으십니다. 사람들은 이 변화의 비밀에 대해 물어볼 것이고 그것을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그분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대가‘ 는 첫 번째 원리이자 기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만남을 가질 때마다 그분의 생명이 은혜 혹는 신령한 선물의 형태로 내게 전달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 이것은 창조되지 않은 에너지(uncreated energies) 라고 불립니다.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6). 은혜로 인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는 아무도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의 삶[1]이란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지속적인 은혜를 계속 내 삶에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분의 생명이 내게 올 때, 이것은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나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며 허락되었습니다.[2]  이 생명을 받아야하며 그러므로 말미암아 은혜가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받을 수 있기 위해서 이해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 첫번째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마음(heart)이 이런 신성한 선물(은혜)들을 받는 데 있어 중요한 내적인 요소의 역할을 한다는걸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초로서 ‘마음(the heart)’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본 원리를 삶에 적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 가르침들은 실질적인 유익이 없는 지식에만 머무르게 될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는 지식데로 살아야 하며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자들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생명을 전할 수 있는 주님의 사역자(목회자)가 될 수 없습니다.[3]

마음은 타락한 인간 본성의 부분이며, 그 마음은 비뚤어짐, 교활함,  불안정함 (오르락 내리락 하는) 및 불화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것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그는 또한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라고도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고 올려드리는 것에서 요동하고 변동합니다. 우리는 온 마음을 주님께 드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마음을 요구하십니다.[4]

마음은 신성한 선물들과 은혜들을 받는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이 본질적인 부분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분열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지만,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히 실제로는 분열되고 나뉘어진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여느 청년들의 그룹이 아니고 사역자(목회자)의 그룹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특별한 부르심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사역을 책임이 따르는 신성한 부르심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역자 혹은 주님의 종은 단순히 주어지는 타이틀이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뉘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적 삶에 특별한 모토(좌우명)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모토를 하나의 단어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그 단어는 “모두,모든 (all)” 입니다. 이에 대한 예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9:8).
‘And God is able to make all grace abound toward you, that you, always having all sufficiency in all things, may have an abundance for every good work’ (2Corinthians 9: 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모든)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모든) 사람을 가르침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로새서 1: 28).
‘Him we preach, warning every man and teaching every man in all wisdom, that we may present every man perfect in Christ Jesus’ (Colossians 1: 28).

위의 구절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가고 싶어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기만 하는 제한된 수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모든 이들이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고 성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즉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데 있어서 성숙하며 성장하여 완전해 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든 삶의 전부를 그리스도께 기꺼이 드리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가 가진 것은 자아, 자존심, 부패함, 더러움, 그리고 여러가지의 것들과 야망으로 채우려 하는 공허함 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먼지처럼 부패하고 사소한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고 순복하지 못합니까 ?

그리스도에게 내 삶의 일부만을 드리고, 동시에 나의 기쁨/즐거움을 위해 또 다른 부분을 지키고/유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특정한 관계, 어떤 열정이나 욕망, 특정한 나의 성향이나 특성을 지키는 것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과 내가 익숙한 것들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5]

사역자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것이 좌우명이 되어야합니다. 따라서 삶 전체가 온전히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아들아  마음을 내게 주며 (마음의 전부를 의미합니다)  눈으로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단순하게 한 방향으로만 바라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23: 26). 이렇게 하면 우리의 온 몸이 빛으로 채워져 밝아질 것입니다(마태복음 6: 22).

마음은 기만적이며 거짓됩니다. 분열되고 나뉘어진 마음의 문제는 은혜를 받는 것을 방해하고 우리의 영적 성장을 막습니다.

첫번째 원리인 “대가의 원리를 이해했다면  “마음이 두 번째 원리라는걸 이해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을 섬기기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분열된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를 위한 온전하고 완전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역자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을 재검토(리뷰)하고 시정해야 할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수정/교정의 시점에 이르는 것은 ​​중요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는 대가가 따름을 이해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잠잠하며 우리의 마음을 살피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숨겨진 동기들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이 열리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의 분열들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 마음이 온전히 그리스도를 위해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일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부분이 있는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안에 다른 무엇인가를 보게되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이것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내가 매달리는 그것, 움켜진 그것으로부터 풀어지고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특정한 문제나 관계로부터 벗어나거나 풀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때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분열되어 원하지 않는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때로는 제거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는 뿌리 박힌 반복적 만성적 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 안의 깊은 곳에서 그것을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우리가 즐거움/기쁨을 느끼고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 상태의 마음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이런 죄를 경멸하는데 그것을 없앨 수 없습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이 강한 손을 뼏치며 도우실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때는 죄에 대한 증오가 내 마음 속에 아직 차지 않은 상태로, “이 문제로 주님께 여러번 간구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경우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 “나는 정직하다; 나는 너처럼 비뚤어져 있지 않다 잘못된 문제를유지하길 원하는건 바로 너란다.” 그 사람은 이 죄를 원하고 그것을 계속 붙들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여 떠날지어다 또는, 사단아 물러갈지어다,” 라고 명하실 때마다 그 죄는 마치 이렇게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나를 원하기 때문에 나는 떠나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한 것이 중요하며, 이런 경우 하나님께 나의 삶에서 그 잘못된 것을 내가 경멸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기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정말로 이 잘못된 것을 제거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경멸하지 않습니다이것을 원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것을 경멸하도록 도와주세요, 왜냐하면 이것은 가짜이기때문입니다. 이것은 저를 노예로 만드는 속박입니다이것은 가치 없는 것입니다거짓 즐거움입니다. 저로 하여금 진리를원하도록 도와주세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향하게 해주세요. 진리를 구하도록 도와 주세요 예수님 당신만이 진리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속박하고 있는 것을 내가 혐오하고 경멸하도록 도와주신 후에, 이제 그것으로부터 자유케 되고 풀어주시도록 그분께 요청할 수 있습니다.

만성적으로 반복되는 죄들, 연약함 및 속박의 문제는 갈라지지 않은 온전한 전심의 마음으로  그 죄들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그 연약함, 속박 또는 죄를 기꺼이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것들로부터 보다 쉽고 빠르게 자유케 될 것입니다.[6] 어떤 것에 마음이 분열되어 있는지 아닌지가 이슈인 것입니다.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그리고 그는 성경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구절로 이어갑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마음을 돌보십니다. 그분은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분열되어 있다면 우리는 심판을 향해 걸어가는 사역자(목사)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역자(목사)로서 큰 특권을 지닌 신성한 명예로운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따라서 이 부르심에는 큰 책임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데 있어 이런 기초를 모른다면, 기반이 없는 공허한 가짜  사역자가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달하지도,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 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이 효과적인 사역이 아닌지 아십니까 ?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나라의 보배 (학개2:7)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저는 회개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사역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갈망하도록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리스도를 그런식으로 반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나라의 보배를 섬기고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사역할 때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끌리고 매료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과 신비가 있기 때문입니다.[7]  우리가 입을 열어 그분에 관해 말하면, 그 말은 젖과 꿀처럼 흘러야 합니다.[8]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필요에 충만함과 만족을 주시는 생명의 근원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의 산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볼 것이고, 그 산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물어볼 것이라[9]고 기록된 거처럼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따라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내려가 아래에 있어서는 안되며  산위에 높이 있어야 합니다.[10] 일부 사역자들은 즐겁게 웃으면서 사람들과 농담하고 쉽고 가볍고 편하게 지내면서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과 가까워 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하면서 산 아래로 내려 간다면, 아무도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냄새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거룩하고 높아진다면, 이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을 높이 들어 올리시는 주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되고 알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아래로 끌어 내립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11]  반면에 세상을 추종하는 자들은 파멸에서 파멸로 이르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파멸과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지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진실된 것, 진정한 것이 있는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다른 세상 사람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사는 사역자(목회자)들의 단순한 말 뿐인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진실된 것을 보게되면 우리가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추구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자를 만나게 되면 그를 따라 달려가서 그의 옷자락을 붙들고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게 해주세요, 왜냐하면 당신 안에 우리가 찾는 그 어떤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스가랴 8 : 23).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문이나, 길, 또는 따를 수 있는 모범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12]  그러나 우리의 삶이 세상을 본 받고 있다면 결코 그 모범이 될 수 없습니다.[13] 우리는 위를 향하여 들리워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초를 올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마음의 방향과 의도를 분별해야 하며 정확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모든 일에 마음이 나뉘어져 있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그리스도 이외에 마음 속에 있는 다른 것들은 버려야 할 우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의 특정 단계에서 하나님을 잊어 버렸고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그의 영적 삶은 약해졌습니다. 그후 하나님은 야곱의 꿈속에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집인 베델, 즉 하나님과의 교제의 장소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깨어 났으며 가족들에 말했습니다: 우상들이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 왔는가!” 야곱는 우상들이 자신의 집에 들어왔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믿음의 아비인 아브라함의 아들 야곱의 집에 우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우상을 마음에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그런 상태에 이른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이를 위한 해결책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우상을 마음 속에 남겨둔 채 하는 말들은 그저 말에 지나지 않으며 그 말을 듣는 사람들도 그것이 단순한 말뿐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에는 말씀이 있지만 그 마음에는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다른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야곱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원했고 그는 다음과 같이 결심/결단 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창세기35: 1 – 4).

오늘 우리도 이와 유사한 결단과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묻어 버리고 그것들을 밟고, 그것들을 넘어서 건너와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그분, 하늘과 땅 위에 계신 주님을 섬깁니다. 그분이 당신의 종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이사야 52:11). 깨끗하고 정결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분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방 신들을 버리고[14] 옷을 갈아 입어야 합니다. 여기서 옷은 행위를 말하며 이방 신은 우상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여정을 계속하기 원한다면, 주님을 섬기는 것의 뜻과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로 데려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방 신들을 버리고 그것을 묻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우리 뒤에 두고 결코 다시 돌아 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또한 옷을 갈아 입어야 합니다. 거룩한 주님을 따르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고 섬기기 위해 은혜의 일하심을 통해 우리의 행위를 바꾸어야 합니다. [15]

[1] 빌립보서1:21
[2] 요한일서 4:9
[3]  로마서8:9
[4] 잠언서23:26
[5] 누가복음 9:23, 누가복음 14:25 – 35
[6]  시편 86 : 11b
[7] 에베소서 3 : 8
[8]  아가서 4:11
[9]  이사야 2 : 3
[10] 마태복음 5:14
[11] 고린도후서3:18
[12] 디모데전서 4:12
[13] 로마서 12:2, 야고보서 4:4
[14] 이사야 30:22
[15] 말라기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