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금의 단계에서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영적인 기초들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이런 기초들을 표면적 측면이 아니라 새로운 측면, 즉 깊은 차원으로 나누겠습니다.

함께 나누게 될 기초들은: 믿음, 기도, 깨어있음 그리고 하나됨 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성육신 절기의 금식 기간에 ‘믿음’에 대해서 나누는 것은 매우 적합합니다. 왜냐하면 이 신성한 성육신은 반대와 대적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순종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으로 인해 나타난 믿음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차서 이 신성한 성육신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가지 참고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 구절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4-5)

오랜 시간동안 믿음을 지킨 하나님의 사람들의 예로 시므온 장로, 선지자 안나를 말씀드렸었습니다.

시므온는 아기 예수를 팔에 앉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2:29-30)

성경은 선지자 안나가 84년[1]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성육신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38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2:38)

구원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온 사람들의 오랜 믿음의 여정 후, 하나님이시면서 성육신하여 나타나신 아기 예수의 이 장면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이후로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계시하셨고 이 구원의 약속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약속은 동정녀 마리아가 그녀의 태 안에 신성한 신비를 받을 때 까지 세대와 세대를 지나면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지속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신성한 아기가 탄생했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 앞에 놓인 이런 믿음의 장면들과 긴 믿음의 여정들은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

이 세대의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의 믿음의 걸음을 계속 걷기 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와서 구속을 이루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수행 할 수 있는 역할이나 책임이 지금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실제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열방을 향해 복음이 선포될 필요가 여전히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위해서 특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준비하기 위해 세례요한과  여러 다른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세례요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1:2)

이에 기초해서 다음의 주요 포인트에 따라 믿음에 대한 메세지를나누겠습니다.

  1. 믿음은 무엇인가?
  2. 진실된 믿음의 특징들은 무엇인가?
  3. 현 세대 믿음의 사람들과 그들의 책임
1.믿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는 다양한 믿음의 종류, 또는 믿음의 측면을 신약에서 볼수 있습니다.

  • 구원의 믿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8)

성경에 따르면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눈을 뜨고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구원에 이르게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 매일 매일 믿음으로 걷기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walk by faith)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5:7)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에 들어온 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인식하고 이해해야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람인 아브라함, 그리고 모든 족장들, 선지자, 거룩한 사람들처럼 믿음의 순종을 성취하고 완수하기 위해 매일 매일 믿음으로 걷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과 약속에 의지해서 믿음의 걸음을 걷는(믿고 믿음대로 사는) 것을 배운 하나님의 사람들을 발견하실 때 이러한 목적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다 해도 그분은 여전히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그분의 말씀과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지만,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이 믿음의 걸음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나중에 더 명확하게 설명하겠습니다.

  • 믿음의 신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

이것은 매우 깊고 신비한 구절입니다.

다른 성경구절에서도 믿음은 신비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집사의 직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2](mystery)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3:9)

우리가 믿음의 진리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실제적 의미로는 믿음이 사실 ‘신비’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참고 성경 구절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이 구절의 의미를 밝혀줄 원어에 따라 이 단어들의 의미를 살펴 봅시다.

특별히 이 두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A. ‘실상(substance)’ (바라는 것들의)

B. ‘증거(evidence)’ (보이지 않는 것들의)

A. 실상(Substance)

이 단어의 직접적인 의미는 ‘실체(realisation), ‘확신(ascertainment), ‘확증(assurance) 입니다.

헬라어로는 : 하이포스타시스(hypostasis)’ 입니다.

떼어 사전(Thayer dictionary: 신약성서의 가장 잘 알려진 사전 중 하나)에 따르면, 하이포스타시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것을 고정시키기 위해 그 아래에 놓인 것, 건물이 세워지는 기초와 같은 것입니다. 이 의미는 우리가 자각할 수 있는 어떤 것, 혹은 실체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 실체는 우리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줍니다.

B. 증거(Evidence)

이 단어의 직접적인 의미는 ‘증명,입증(proof)’입니다.

헬라원어로는 ‘ἔλεγχος’인데 엘-엥-크호스 라고 발음합니다.

떼어 사전에 따르면, 이 증명(proof)이라는 뜻에는 또한 ‘확신(conviction)’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 거죠?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가운데서 어떻게 경험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

믿는 자들은 믿음을 발휘해야 하는 어떤 특정한 문제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며칠,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무언가가 자신 안에 형성되고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실체(substance)입니다.’영적인 실체(spiritual substance)’ 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그 사람이 마음으로 느낄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훈련되기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믿는 자는 이 문제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먼저 확신하므로 그가 기도하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자신 안에서 어떤 움직임과 신성한 에너지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이 신성한 에너지 안에는 실제로는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여 믿음의 눈으로 문제들을 보게 만드는 영적 통찰력(insight)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롬4:17) 분으로 믿었던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로 표현한 것이죠.

이 문구를 깊이 생각해 보면, 모순되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 역설처럼 보입니다. ‘입증과 확증’을 나타내는 ‘증거’라는 단어가 ‘보지 않는 것들’이라는 문구에 따라 나옵니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있을 수 있나요?

이것이 보이지 않는 차원에 있는 것을 보게하는 영적인 통찰력을 산출하는 믿음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영적인 눈 혹은 영적인 통찰력이 강해집니다. 따라서 이 영적인 눈이 요청된 문제를 보지 못한다면 믿음(영적인 실체)이 형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중요한 것을 계시하시거나 혹은 실체와 통찰력, 증거와 확신으로 관 씌어진 기도를 완성해 가면서 계속 기도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가 정해진 때에 일어날 것을 알게 됩니다 – 악한 자의 대항이나 혹은 믿음의 대적의 결과로 어느 정도 지연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은 보이지 않는 영의 영역에서 이미 그것을 보았기 때무에 그 일이 확실히 일어날 것을 압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기억합시다.(그의 예언은 때때로 구약 성경에 대한 믿음의 예언이라고도 함):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2:3)

이 믿음의 신비, 이 특별한 믿음의 형태를 배운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모든 목적들, 즉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믿음의 비전들이 이 믿음을 통하여 성취될 것입니다.

  • 믿음의 마지막 유형: 성령님의 은사로서의 믿음

믿음의 이 마지막 유형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읽을 수 있는데 사도바울은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은사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12:9)

이런 종류의 믿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양한 상황에서 그분의 지혜와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님의 특별한 선물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의 다음과 같은 예가 있습니다: 모카탐 산(Mokattam Mountain)이 움직임 – 콥틱 교회에서는 성탄절이 시작될 때 3일을 금식합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맞는 믿음의 선물을 위해 기도하고 구합니다. 이 특별한 믿음의 선물을 통해 모카탐 산은 성자 시몬(Saint Simon, the tanner)의 기도와 믿음으로 움직였습니다. 이것은 10 세기 말 아브람함이 주교때 있었던 일입니다.

2. 두번째: 진실된 믿음의 특징들

가장 중요한 믿음의 특징들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명확하고 직접적인 성경적 진리를 상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지속적인 믿음의 행함이 너무나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영적인 걸음들은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시대를 이해하고 분별하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현재 우리의 때에 나타나는 믿음에 종류들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순결한 믿음
  • 거짓된 믿음
  • 믿음의 거부

순결한 믿음평강의 왕인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삶의 경험 위에 세워집니다. 잠시 후에 이 순결한 믿음의 본질적인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거짓된 믿음세상의 영과 섞인 믿음입니다. 세상의 영과 하나님의 영 사이에서 지속적인 조화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신성한 명령과 혼의 욕망과 욕정 그리고 믿는 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영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조화는 잘못된 것이며 불가능하다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후6:14)

믿음의 거부는 한 사람이 믿음과 관련된 모든 것들, 심지어 인격이신 하나님, 그분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시작은 잘했지만 나중에 그들의 등을 돌리고 믿음을 완전히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순결한 믿음의 중요한 특징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 역동적인 믿음
  • 믿음의 시험들
  • 믿음의 대적들
  • 믿음의 담대함
  • 역동적인 믿음

진실하고 살아있는 믿음은 역동적입니다. 많은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 즉 피상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정적으로 변했버렸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런 정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영적 삶은 줄어들기 시작하고 멈추게 되며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를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살아있는 교제는 영적인 자극과 지속적인 새로움으로 가득합니다. – 어떤 불확실한 상황이 그 사람을 둘러 싼다 할지라도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 있는 동안에도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63:1-2)

이 역동적인 믿음은 두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앞을 향해 그리고 위를 향해 움직이게 합니다. 그 사람이 창조된 목적을 수행하고 완성하게 하기 위해서 그가 앞으로 전진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날들의 중요함을 깨닫숩니다. 또한 영원한 하늘의 본향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해 그 사람을 위를 향해 움직이게 합니다.

  • 믿음의 시험들

이것은 역동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경험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정적인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역동적인 믿음은 테스트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시험에는 이유들과 열매들이 있습니다.

원수는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믿는 자가 나아가는 모든 믿음의 새로운 단계 마다 대항해서 강렬하게 고소과 비난을 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믿음의 단계는 항상 새로운 기름 부음, 새로운 권위, 그리고 하나님과 천사들과의 교통의 새로운 차원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을 위해 이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반면에 우리가 이 시험 가운데 굳게 서 있을때 원수의 고소와 정죄는 무효가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시험하는 동안 우리를 강하게 붙드십니다. 반면에, 시험 후에는 믿음이 승인됩니다. 믿음이 굳건해지고 그 일하심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일하심이란  제가 위에서 언급한 기름부음, 권위, 교제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시험의 성경적 예들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아브라함의 시험입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2:1-2)

우리 모두는 이 이야기와 그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22:16-18)

시험에서 걸려 넘어져 다른 결과를 보인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그들이 들어가기를 원하신 약속의 땅을 정찰하라고 사람들을 보냈을 때 일입니다. 그들이 돌아 왔을 때,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였고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험에 걸려서 회중이 불평하고 두려워하게 한 나쁜 보고를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고 약속의 땅에 들어 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민수기 13 장과 14 장에서 읽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교훈들을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런 진리들의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책인 욥기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사밧의 이야기처럼, 때때로 하나님은 그분의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 테스트들을 허락하십니다.

사방에서 적들이 그에게 왔을때,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역대하20:12)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을 찾았고 여호사밧은 이렇게 말하며 주목하게 했습니다. 여러분의 주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설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엄청난 전리품들을 취했습니다.(역대하20:20-30)

우리는 이사야서에서 히스기아 왕의 시대에 앗시리아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했들 때의 일에 대해서도 읽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그들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이사야37:3).  이 말은 영적인 연약함과 준비가 부족한 상태를 내비치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했을 때, 주님은 그분의 천사를 보내어 하루만에 앗시라아 진영에 있는 185,000명을 전멸시키셨고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둘러싼 포위를 무너트리셨습니다.(참고:이사야 37:36-37)

따라서 우리는 믿음의 시험은 인정, 정죄 혹은 영적 깨어남을 위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 믿음의 대적들

이것은 참되고 순결한 믿음의 특징들 중 또 다른 측면입니다.

믿음의 비전과 관련된 대립들은 거의 불가피합니다. 원수는 믿음의 역사와 그 성취를 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원수의 계획에 있어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서에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기도를 회복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축하려는 일과 관련해 느헤미야가 직면했던 일들에 대해 읽습니다. 그가 일을 시작하자 마자 대적하는 일들도 시작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모양이 있었습니다: 조롱, 겁먹게 함, 그리고 방해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인 느헤미야는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6:3). 그리고 그들이 그를 두렵게해서 도망가게 만들려고 했을 때도 느헤미야는 말했습니다: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6:11)

그는 그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한 손으로는 건축을 하고 한 손에는 무기를 들라고 독려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모든 일에는 영적인 전쟁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4:17)

동시에 그는 끊임없는 기도하면 주님을 계속 신뢰했습니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6:9b)

그는 또한 새벽부터 정오까지(8: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하도록 모든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이 대적을 스가랴서 4 장의 말씀에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귀환했을 때에 믿음의 대적의 큰 그림을 봅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을 붙들었을때 위대한 결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선지자 스가랴가 다음과 같이 말했음을 우리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큰 산아(대적하는 산)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오실 메시야)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를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4:7)

믿음의 저자가 인내와 그분 앞에 놓인 기쁨을 통해 승리의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음을 잊지 맙시다.

히브리서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대적)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12:2-3)

  • 믿음의 담대함

이것은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믿음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의 말로 우리를 상기시켜 십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3:12)

다음 사항들을 준수하면 이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마음의 상태: 회개하는 겸손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
  •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원수를 이기셨습니다.
  • 참고 인내함으로 고통을 감내함.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12:1)”
  • 믿음 없는 말들을 피하고 실패감이나 좌절감에 빠지는 것을 피할 것 .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1:7)
 3. 세번째: 현 세대 믿음의 사람들과 그들의 책임

평범한 믿는 자에게 기대되는 믿음의 걸음과 자신의 세대를 향한 책임을 깨닫고 그 일원이 되기를 소망하는 믿는 사람에게 기대되는 믿음의 걸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마음과 의도의 진실성을 보시고 그 사람을 부르십니다.

성령님의 훈련을 통해 그 사람은 준비되고 믿음의 횃불을 들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기름부음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 시대의 역사의 얼굴을 바꿉니다.

우리는 우리의 날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목적들을 분별해야할 너무나 큰 필요가 있습니다. 가까운 것과 먼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이 아시는 어떤 시간 이후에 오게 될 목적들 뿐만 아니라 즉각적인 목적들도 있습니다.

가까운, 혹은 즉각적인 목적들은 우리 세대와 그 안에 있는 악한 자의 계획, 영혼들의 상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 및 나라들의 상태를 아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먼 목적들, 혹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길인 주님의 재림과 관려된 하나님께서 아시는 어떤 시간 후의 아직 오지 않은 목적들 입니다 –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첫 초림 전에 했던 것 처럼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한편으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역하는 지를 먼저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고후6:1). 주님 한 분만이 그런 상황들에서 일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다른 한편으로, 목적들을 알고 구체화한 후에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해야 할 방법들을 배워야합니다.

가장 중요한 방법들은 :

  • 중보기도 :

중보기도는 책임을 가지고 마음에 짐을 지고 규칙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 희생 :

희생은 물러서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악한 자의 대적과 고통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을 신뢰함에 확고부동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혼의 사랑과 그들을 섬기려는 소망에서도 그러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4:5)

  • 살아있는 모범 :

복음대로 살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선포하는 모델들과 모범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삶이 가능한 이유는 소망하고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초 위에 완전히 세워졌기 때문이며 절대 실패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성경에서 읽습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16)

  • 예언적 기름부으심이 있는 가르침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지고, 이해되어 지고, 혼에 뿌리 내려지게 해서 그들을 구원합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1:21)

맞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혼에 심어지고 뿌리내릴 때 묶임과 사단으로부터 자유케 됩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들은 어떨가요?

믿음의 사람들이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에 대해 나누었으니 이제는 그들의 몇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몇가지 특징들

  • 믿음의 사람의 마음 :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 된 마음입니다. 다른 것에 사로 잡히지 않은 마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분의 뜻 외에 다른 어떤 문제에서도 진정한 기쁨을 찾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의 구별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순종하는 것에 기초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22:37-39)

  • 하나님의 사람의 믿음

그는 주님을 완전하게 신뢰함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시편에 기록된 것처럼 자신이 예배하고, 자신의 친구가 되신, 절대로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주님을 알기 때문에 그는 주님에 대한 완전히 신뢰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138:8)

뿐만 아니라 약속을 분별하고 마음으로 약속을 붙잡는 방법도 아는 믿음입니다.

또한 시간을 분별하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을 보는 법도 압니다.

그분을 거부한 사람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12:56)

따라서 믿음의 사람이 시간을 분별하고 사람들의 상태를 알때 그는 그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고 섬길지를 알게됩니다.

  •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주인처럼 인내하고 유혹받습니다.
  • 그는 도전 가운데서도 겸손하게 인내하며 오래 참는 법을 배웁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처럼 굴욕, 멸시 또는 거절을 받아들이는 것이 주님의 고난과 그분의 부활의 능력에 동참하는 것임을 압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3:10)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겸손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내해야는지 알기 위해 때때로 그들의 고통 또는 그들의 죄 까지도 동참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회개로 이끌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위대한 구원을 발견하도록 이끕니다.

여기에는 매우 특별한 분별력과 인도하심이 요구됩니다.

이에 해당하는 몇가지 성격적 예들이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그는 백성의 가증과 죄악에 어느 정도 참여하고 유대 법에 따르면 더럽혀진 빵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는 또한 실제로 고통스러운 육체적 제한 가운데 있도록, 심지어 그의 백성들의 상황 때문에 굶주림과 갈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에스겔서 4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

그는 자신의 아내가 간음을 행했을때 큰 고통을 경험했고 아내를 용서하고 회복시켰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상처받은 마음의 사랑의 신비를 배웠고 이 상처받은 사랑의 신비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신약에서도 몇 예들이 있습니다 :

사도들은 모두 복음을 위해 죽음의 지경까지 고통을 감내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복음의 메세지를 그들의 시대에 온 세상에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극심한 고통에 직면했던 성인들의 삶에는 다른 예들을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적 성인 아타나시우스(St Athanasius)가 아리아 이단으로 부터 믿음을 보존하고 보호하는데 열심이였던 것 같이 그들에게 전해진 믿음을 보존했습니다.

자신들의 시대와 장소에서 역사의 얼굴을 바꾼 수없이 많은 동방의 성인들과 서방의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거룩한 믿음의 횃불을 든 믿음의 사람들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면, 지금:

우리는 우리 세대를 위해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 선택하고 받아들입니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2:17b)”라고 주님에 대해 기록된것 처럼 우리의 마음은 우리를 삼키는 진정한 거룩한 열심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신뢰를 받고 보냄받기 위해 인내하고 있습니까?

이것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으로 남아 있으며, 말로가 아닌 확신으로 우리의 대답과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다음의 구절들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전1:5)

+ 아 멘 +

[1] 원문은 그녀가 남편과 7년을 산후에 84년 동안 과부로 지냈다고 기록함

She was of a great age, and had lived with a husband seven years from her virginity; and this woman was a widow of about eighty-four years, who did not depart from the temple, but served God with fastings and prayers night and day.(Luke2:36~37 NJKV)

[2] 헬라원어의 의미는 비밀이 아니라 신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