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성령님의 일하심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시편119: 112).

 “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잠언 23: 19).

마음(heart)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심적인 부분입니다. 사람의 깊은 내면의 방향, 즉 사람의 영입니다.   사람의 뜻과 마음이 깊도다” (시편 64: 6).

하나님의 눈은 사람의 마음을 바라 보시며 그 마음의 방향과 성향을 살피시기 때문에 (사무엘상 16 : 7) 마음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도하고 예배하며 사역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주의를 기울이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 동안에 그 사람의 마음이 잘못된 방향과 성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이 잘못된 길이나 방향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차를 운전하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 나아간것 같이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자신이 잘못된 길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과 여러가지의 상황 가운데서 마음의 여러가지 반응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반적으로 마음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갈리지 않았는지 (나뉜/분열된 마음이 아닌지) 주의를 기울이고, 역대상 28 장 9 절에서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해줄 때 말했던 것처럼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 의 마음을 갖고 있는지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저는 앞서 살펴본 성경 구절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이 두 구절은 시편과 잠언에서 여러 번 나오는 “ 마음을 기울이라 라는 말씀 중 두 개의 예입니다. 내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방향을 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의 방향을 인식하고 분별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방향을 분별한 후에는 그 마음을 다루어야 하고 가야할 특정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는 언제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왕상 18:21)  마음아, 네가 두가지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없다하나의 방향을 결정하고, 네가 취할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다루지 않으면, 2 ~ 3 년 후에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스스로를 발견하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서는 갑자기 왜 이렇게 미지근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일찍부터 마음이 살짝 방향을 바꿔서(이탈했던)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지만 그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계명의 길로 기울게 하고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고/노출시키고 바로잡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도움을 간구할 때 이루어집니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23, 24).

다음과 같은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주님기록되기를 당신께서는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17:10). 제발 마음과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것은 실험실에서 실행되는 시험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음을 시험하십니다.

우리는 신명기 8 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잘못 기울어지고 그릇된 방향에 있음을 알려 주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시험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잘못된 방향으로 인해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들에 대해 고린도전서 10장 5 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우리는 인격이신 성령님, 우리의 보혜사를 더 잘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동반자 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시는 삼위일체의 인격이십니다. 우리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신 파라클레토스(Paraclete) 이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수록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에 대한 더욱 깊은 계시를 더 많이 드러내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상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수련회에 함께 있든지, 또는 영적인 모임에 함께 있든지, 다른 어떤 장소에 있든지 간에; 장소가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장소가 그 날을 좋은 날로 만들거나 영을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성령님, 즉 보혜사이십니다. 그분이 가까이 오실때 모든 영적 공기가 바뀝다.; 우리 가운데 계신 그분의 임재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뜨겁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이 근심하시지 않도록, 불이 꺼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때로 영적으로 뜨거워져서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말을 하고 난 후에 불이 소멸되었음을 발견한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각 개개인 안에서,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서 성령을 근심하시게(슬퍼하시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목회자/사역자의 한 가족으로 함께 주님을 섬겨 왔습니다. 성령님께서 이런 그룹/모임을 보실 때면 이런 그룹의 사람들을 하나의 영적 가족, 하나의 망 (net)으로 연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체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슬프게 하는 일들을 피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민감하며, 서로를 향해 온유하게/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로와의 관계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골로새서 3:12-15).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서로에게 복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엡 5:21). ; 나이가 많은 이들을 존경하고 나이가 어린 이들을 사랑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근심하시고 슬퍼하신다면 우리는 패배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의 사역을 축복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는 분은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때문에 근심하시면, 우리는 무언가가 잃어버리고 부족한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고 예배하지만 그분께서 근심하고 슬퍼하시기 때문에 무언가가 잃은/상실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는 법을 배워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