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신비(mystery)이시며 또한 계시(revelation)이십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신비이십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신비 [1])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2:2)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품안에서 그분과 연합하여 계니다. 하지만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의 품에서 나오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아버지가 누구이신지 이해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본래 하나님을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18)

하나님은 내가 전하는 기쁜 소식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선포된 말씀으로 여러분을 믿음에 굳게 세우실 있습니다. 기쁜 소식은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비밀(신비)이었습니다만 이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으로 예언자들의 글을 통해 계시되고 알려져서 모든 민족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16:25-26)

  • 그분은 성육신 하셨고 우리의 구원과 구속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피로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1:7)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하여 주시고, 우리의 구원과 구속을 주신 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로고스 (Logos),”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각 페이지 마다 그리스도가 계신 것입니다. 동시에 그 말씀의 각 장들은 우리에게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가 계시되어 있는지 보기 위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의 책들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 모세의 오경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창조를 완성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있으라 하시니있었고.”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리스도의 신비, 말씀인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아버지와 연합을 이루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에는 생명과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이 말씀은 그리스도 그분이며 인류를  향해 나아기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신비이시자 계시입니다. 첫번째 계시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분에 의해서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천사들과 영적 존재들과 만물이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1:16)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말씀의 창조의 역사를 통해 지음받았습니다.

잠언에서 우리는 다음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 (잠언 8: 30, 31).

여기서 그리스도는 지혜의 형상으로 성육신하셔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그분이 지혜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게 되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우리의 지혜가 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며 우리 죄값을 지불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십니다. (고전1:30)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그분의 입에서 지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그분의 구속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뜻과 계획을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 이십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인이나 그리이스 사람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입니다. (고전1:24)

그리스도는 말씀이시며, 지혜이시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분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으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기 원한다면, 그분의 뜻과 계획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말씀이시며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에베소서 2:10).

  • 우리는 시편에서 구원자이시며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에 관해 읽을 있습니다.

구속이 일어나기 전이였던 구약에서도 이것은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시편에서 메시야, 구속자, 우리를 죄와 영적인 연약함 뿐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들, 문제 및 환난에서 구해주시는 구원자에 대해 읽습니다.  그분은 사단의 모든 악한 계획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시편 103:4에 보면 : 생명을 파멸에서 구하시며 너에게 풍성한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그들은 구약에서 본 그분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모든 세대는 그분을 기다렸고, 시편에서 그분을 노래했고 찬양했습니다. 메시아에 대해 말한 첫 번째 사람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였습니다 (그녀의 찬송 가운데 언급). 동정녀 마리아는 한나의 찬송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메시아는 모든 문제들, 내적인 것과 외적인 모든 문제들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문제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사단과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내적, 외적 문제들의 원인입니다. 때때로 세상에서 직면하는 문제와 어려운 상황은 죄로 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내면의 삶에 구속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만큼 우리의 외적인 환경도 풀어지게 됩니다. 천사들과 신성한 임재가 있는 특별한 영적인 영역이 우리를 둘러싸게 될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그들이 침입하거나 침투하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 선지자들은 또한 여러 방식으로 그리스도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각 선지자는그분을 서로 다르게 보았습니다.

스가랴는 그분을 포도주 곡식처럼 매우 부드럽고 온유한 분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스가랴 9 : 17)

이 말씀에는 깊고 신성한 진리가 있습니다.

아담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와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아담의 어려움을 수용하고 그에게 새로운 힘과 에너지를 주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왔을 때 아담은 지배하기를 원하는 신이 되었고 하와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스가랴는 구속자가 오셔서 피조물을 처음의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새 아담, 즉 구속받은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곡식으로 자신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 이 새로운 아담이 그리스도를 먹을 것입니다. 그 결과 새로운 속사람이 자라서 점차 강건하게 될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 할 수 있게  될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와가 마셔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채워질 포도주이십니다. 그 결과, 그녀는 이 땅의 기쁨이 되며 모든 어려움을 들어올릴 것입니다 .

살은 참된 양식이요 피는 참된 음료로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6:55-58)

미가는 그리스도를 통치자로 바라보았으며, 그분의 기원/근본은 아득한 옛날(상고) 까지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 5:2).

그분보다 위대한 분은 없습니다.

그분은 각 사람의 삶을 향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선율과 같은 것, 교향곡과 같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은 이 땅의 교향곡과  같습니다.

미가는 또한 그분을 열방을 다스리시는 분, 열방의 통치자(각 개인의 통치자 뿐만 아니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분은 이 땅의 모든 왕들의 왕이십니다. 그분을 통해 이 땅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분을 실로 (Shiloh)’, ‘그분의 손안에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계신 으로 보았습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기 49:10).

우리의 모든 일들은 우리의 매니저나 상사의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들은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학개는 그분을 모든 열방의 소망 (the Desire of All Nations) 바라 보았습니다.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 이르리니 내가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2:7)

그분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그분을 더 원하고 더 많이 그 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분이 언급될때 마다 그분을 더 소망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그분을 신랑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솔로몬은그분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

 “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 (아가서5:10)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  (아가서1: 12)

그분이 우리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은 특별한 사랑으로만 채워지고 만족될 수 있음을 아십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신 사랑입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에  세상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세상의 사랑으로부터, 거짓된 사랑으로 부터 정결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감정에 만족을 주는 특별한 신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태어나면서 부터 가지게 되는 소속감과 보살핌, 따뜻한 애정에 대한 우리의 깊은 필요를 만족시켜 주시는 특별한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우리의 감정, 느낌, 애정을 충족시켜 주는 신부의 사랑을 주십니다. 우리의 이런 감정들은 사랑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여러 곳에서 사랑 받기 위해 구걸하게 됩니다. 사랑을 구걸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상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신부 사랑은 부요하며 만족을 줍니다.

 신약의 예수님

  • 사복음서의 예수님

복음서 저자들은 그리스도를 서로 다르게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사자로, 사람으로 그리고 독수리로 보았습니다.

마태 복음은 예수님을 크게 존중 받으실  왕으로 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분을 사자로 봅니다.

그분은 모든 능력과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에 사단을 정복하실 수 있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을 지라도 (베드로전서 5 : 8)”  유대 지파의 사자는(계시록 5 : 5) 마귀를 물리 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그분을 부드럽고 다정한, 당신의 피조물을 향한 연민과 애정이 가득하신 인간으로 봅니다.

그분은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십니다. 그분은 또한 존중 받지못하고 대우받지 못했던 그 당시(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의)의 여자들을 돌아보셨습니다.

복음서에 언급된 그리스도의 기적들은 절반이 남성을 위한 것이였고 나머지 절반은 여성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비유들에서도 절반은 남성을 예로 드시고 나머지 절반은 여성을 예로 드시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여자들의 존엄성과 명예를 회복시키고 남성과 여성의 존귀함에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너희는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3 : 28)

창세기 1장 27절에서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는 아비되심과 어미되심(Fatherhood and Motherhood)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존재에 당신을 반영하기 원하셨을때, 남성과 여성, 두 가지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둘은 동등하고 평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바울이 히브리서와 골로새서에서 기록했듯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동등하게 창조 하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아이, 여자아이 모두에게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질병을 가진 아들(마태복음 17:14-18)과 가나안 여인의 딸(마태복음 15:16-28)을 고치셨습니다. 그분의 비유에서도 남자와 여자 모두를 예로 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비유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3:21). 그분은 모든 피조물에게 오신 것입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그리스도를 예물과 제사를 드리시는 대제사장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예물과 제사를 드리고 계시다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7:25, 8:1~3).

사도 요한은 그분을 독수리 바라 보았습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요1:1-5).

그분의 신성은 매우 높으며 동시에 그분은 성육신하셨기에 인간과도 매우 가깝습니다.

요한 복음을 읽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 즉 그분이 하나님 이심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요한 복음의 어느 부분을 읽을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그분과 똑같은 말을 하거나  똑같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요한복음 18:37). 우리 중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발견한 후에 똑같이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요한복음 17:4). 우리 각자는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고 그 일을 완수할때 까지 지속하고 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강조했습니다. : 하지만 그분은 성육신하신 신성, 하나님이자 인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시기 위해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갈수 있고 그분이 하신 기도를 할 수 있으며 아들처럼 하늘의 아버지 안에 우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 복음의 서두에서 우리는 다음의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메세지입니다.

사도행전은 교회에 대해 말합니다 ; 하지만 그리스도를  ‘메세지’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 (사도행전 4:12).

그분은 구속과 구원의 메세지이십니다.

그분은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의 메세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14:6)

그리스도는 우리가 선포하고 전파해야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사람을 가르침은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로새서 1:28).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 받아…” (1:5)

그분은 우리가 자랑스러워 해야 할 메시지이십니다.

 

서신서

서신서를 읽을때 우리는 모세가 성막에 관해 말한 것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성막은 실제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림자이며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만나이시며, 언약궤이시고 , 진설병을 위한 상이시고, 그분의 구속의 모든 신비를 지니신 놋 제단이시며, 그분의 기도와 중보의 모든 신비가 있는 순금의 분향단이십니다.

신약에서 이런 그림자와 상징들이 드러난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셨으며 교회에 영양을 공급하는  지속적인  음식이 되셨습니다.

서신서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이야기고 있습니다. 그분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의 믿음의 근원이시고 믿음을 완성하시는(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히브리서 12:2). 그리스도는 교회가 세상에서 머무르는 동안 이 땅에서의 역할과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교회 앞에서 나아가십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그분은 교회(신부)의 신랑으로 나타나시고 선포되실 것입니다. 교회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신부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될 것입니다(계19:7). 예수님은 이 땅의 왕으로 선포되실 것입니다. 그분의 구속의 완전한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과 하나된 신부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릴 것입니다. 신부는 그분의 뼈와 살로써,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고(에베소서 5:27,30) 그분과 같이 거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십니다(고전15:28).

따라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충만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신 처음처럼 똑같이 이야기는 끝이 날것입니다.

그분의 삼위일체가 우리에게 계시되었고 그분의 계획이 계시되었습니다. 하지만 타락을 통해 원수가 방해했습니다. 그런 다음 구속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들이 이루어지고 완성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될 것입니다.  신랑과 연합한 신부가 드러나 아버지께 드려지고 하나님는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간략한 개요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이와 같이 이해하고 그분을 찾을때 우리는 그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채우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생명의 신비이십니다. 그분이 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삶 전체가 그분의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고 그분과의 교제 안으로 들어갈때 우리의 삶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해야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의 일하심:

신약 성경을 읽을 때 다음의 두 가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니다.

  • 그리스도의 인격
  • 그리스도의 일하심

신약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의 성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이미지를 우리 안에 흡수하고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갈 수 있게합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 : 29).

동시에 신약은 그분의 일하심, 그분의 구속의 역사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구속의 역사가 우리의 속사람 가운데 더 들어올수록,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더 많이 변화되고 그분을 더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해서, 서신서는 그리스도의 일하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복음서는 아들의 인격과 성품을 묘사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설명하며, 그분께서 어떻게 이 땅에서 사셨는지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분의 날들과 그분의 일하심, 그분의 행동을  보아야 합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그분이 걸으신 것처럼 우리가 걷기 위해 그분을 볼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요일2:6:). 우리는 그렇게 부름받았고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할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흡수하고,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먹고 마시고 강론해야 합니다 (신명기 6:7). 그러면 성령님께서 점차적으로 인격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우리의 생각과 이해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의 눈이, 인격이신 그분을 향해 더 많이 열릴수록,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더 많이 변화될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서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전에 읽었던 이야기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복음서는 이 세상에 오신 살아계신 신성한 성육신의 인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죽은 자들에게 생명과 빛을 주기 위해 우리의 타락한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시고 우리 인간의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도록, 타락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볼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능력을 주시는 분은 오직 그분이십니다.

복음서를 읽을때 우리가 그분처럼 살수 있도록  우리의 무릎을 꿇고 그분의 생명의 신비를 부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아들이 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를 기뻐하시고 그분의 뜻을  선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6:10)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온전하고 완벽한 인류가 이 땅에서 어떻게 걷고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는지를 봅니다. 우리도 똑같이 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간됨은 그분처럼 완전하지 않지만 그분의 구속의 역사를 통해서 구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일하심과 도우시는 그분의 은혜를 통해서 그분이 하신것 처럼 할수 있게 될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분과의 교제를 누리는 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령님과의 교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고 우리 안에 거하시실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희생 제물이 피를 흘린 후에 기름이 부어 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 이루었다고 말씀하셨고,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의 역사를 통해서만 성령님과 교제 할 특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동반자와 위로자가 되시도록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를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며, 그분으로 인해 입양되었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를 알고 성령님과의 동행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문이십니다. 그분은 시작과 끝이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1:8). 그분은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과 구속의 이유입니다.  우리는 타락했으며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소도 안에 있는 영광의 소망입니다.(골1:27)

  • 사도행전은 교회에 대한 것입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반영하고 서신서는 그리스도의 사역,그분의 구속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서와 서신서 사이에는 교회에 관한 책인 사도행전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고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같은 방법으로 살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움직였고 사역했으며 핍박받고 고통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단을 이기고 이 땅에 빛과 생명을 확장했는지를 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세워진 교회는 구원을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은 이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합니다. 교회는 어둠, 죄와 죽음 가운데 있는 인류에게 선포해야 할 메세지가 있습니다. :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생명과 빛이 있다 ” 이것이 교회의 메시지입니다.

교회는 말로, 혹은 싸움과 다툼으로 메세지를 전해서는 안됩니다. 겸손으로 가득 찬 거룩한 삶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죽기까지 희생 할 준비를 하며 전해야 합니다.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리스도의 신비가 사람들에게 미치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걸으신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죽으셨듯이, 우리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 사랑을 통해, 겸손을 통해, 겸허함을 통해, 심지어 필요한 경우 피 흘림을 통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 서신서에서는 구속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교회가 구속의 역사를 통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읽을 있습니다.

구속은 각 사람을 변화 시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함께 모아서 하나되게 해서 머리와 연합한 진정한 몸으로 만듭니다. 이로 인해 온전한 사람 ”이 됩니다(에베소서 4:13). 이 온전한 사람은 마치 자신이 이 땅의 그리스도인것 처럼 이 땅을 거닐 수 있습니다.  그분이 육신의 몸으로 행하신 것과 똑같이 그분의 교회, 우리를 통해서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교회는 곳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이 나타나도록 그분의 구원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이 그분의 나라가 되어 왕이 오실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마6:10)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교회임에도 우리의 머리와 연합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한 몸이 되기 위해 지체로서 함께 연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머리와 연합된 것은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합된 지체들이 되기 위해서는 각 지체가 구속의 역사를 계속 경험해야 합니다. 그럴때 성령님은 구속된 지체들을 모아서 하나로 연결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풍성하게 흐를 것입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시편 133:2). 이 옷이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전파되도록 세상을 향해 펼쳐질 것입니다 .

따라서 우리는 서신서를 읽을 때 그리스도의 일하심과, 십자가의 역사와, 예수님의 보혈의 역사,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 그리스도의 승천의 역사, 그분이 우리 안에 부어 주신 성령님의 역사, 구속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속받은 사람, 성령님이 몸에 연합시킬 수 있는 구속받은 지체로서 머리와 연결된 살아있는 몸으로 형성되기 위해서 이 위대하고 신성한 역사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배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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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헬라원어의 의미는 비밀이 아니라 신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