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상적인 영적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깊이 있는 영적 삶을 살고 있습니까? 즉, 표면적인 단계입니까, 아니면 깊은 단계입니까?

오늘, 이 시대 가운데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매우 필요한 중요한 기초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이 기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믿음
  • 연합
  • 기도
  • 주의 깊음 (방심하지 않고 깨어 있음)

이렇게 질문할을 수 있겠죠: 이것들이 뭐가 새롭습니까? 우리는 모두 이것들이 영적 삶의 기본적 기초라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은, 영적인 삶은 우리에게 익숙한 학구적인 지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삶은 신비한 삶입니다 !

예를 들어, 영적 삶의 근본적 기초로서 믿음이나 기도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 각 단어에 여러 다른 차원(dimensions)과 특성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적 삶에서 어떤 한 단계에서 다음의 단계로 나아갈 때는 또 다른  믿음이나 기도의 차원, 특성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특성이나 차원들은 다음의 요건에 따라 다르고 다양합니다.

  • 개인의 영적 상태
  • 영적인 일들에 대한 개인의 일반적 이해
  •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의미/중요성,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요구되고 기대되는 그런 사건들에 대한 적절한 반응
  • 하나님의 자녀인 각 사람에게 요구되는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의 일의 책임에 대한 분별력

이외에도  더 많은 특성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각각의 기초들에 대해 우리 나름대로의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정의를 내린 후 그 단계와 한계에서 멈추어 버립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학구적인/학문적인 접근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교회를 규칙적으로 출석하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 시편 기도를 하거나,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머지 영적 기초들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정의 내리고 그 한계에 머무릅니다.

사실은 이런식의 접근이 우리의 영적인 삶을 깊이 없는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것이 되게 합니다. 이로인해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책임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이런 일들은 일반적인 하나님의 자녀와는 상관 없는, 목회자나 사역자들이나 신경 써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생각과  이해는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과는 전혀 다릅니다. 사도들이 기록한 것과 다른 생각이고, 초대교부들이 우리를 위해 거룩한 유산으로 남겨준 기록들의 내용과도 상반된 생각입니다.

따라서 영적 기초들의 기초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말하고 싶은 중요한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각이 일반적으로 피상적이고 표면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생각하는 사상가(thinker)’일 필요는 없으니 이런 것들은  “생각하는 사상가(thinker)”로 불리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은사와 같은 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삶 전체에서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믿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신성한 빛이 부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신성한 빛은 이 세상의 단순한 지적인 은사와 같은 것이 아니며 그 이상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복음서의 말씀에 귀 기울여보십시요: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1: 4).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8: 12). 따라서 예수님는 산상수훈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 5:16).

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들을 수 있습니다. :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 12: 36).

또한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 5: 8).


모든 말씀들이 우리로 하여금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고 이해하게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특별히 구별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달리 생각/사고로 사람을 구별하셨습니다. 사회학에서도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생각은 어두워졌고 악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생각은 피상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특히 모든 빛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세상을 위해, 정욕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은혜는 이런 생각을 교정해 주시고, 밝혀 주시며, 깊게 해주셔서 피상적인 믿는 자를  ‘생각하는 사람(a thinker)’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일들을 이해하는데 한계를 가진 인간적인 재능을 의미하는 그런 일반적인  사상가(thinker)가 아닙니다. 이런 일반적인 사상가는 인간적이기 때문에 육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신성한 진리의 빛을 받아서 자신의 세대를 향한 책임을 이해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 신성한 빛이 그들 안에서 점차적으로 증가되고 채워져서 하나님의 신비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을 향한 자신들의 큰 책임도 더욱 깨닫게 됩니다 – 그것이 기도이던, 사역이던, 긍휼 사역이던 그 어떤 것이든지 말입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사역도 우리가 알고 있는 관점의 사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에너지와 권위를 품고 사람들과 상황들을 변화 시키는 기도와 사역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로서  ‘생각하는 사람’의 특성들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빛의 원천이 주워졌음을 깨닫는 믿는 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고 그가 살고있는 세상에 대한 그의 책임과 누군가가 하나님의 자비로 자신들을 방문 할 때까지 기다리는 세대를 점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표면적인 생각의 , 피상적인 삶을 계속 살아가겠습니다 ?

아니면,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책임에 따라서 지식이 자라는 영감 받고 빛나는 삶을 것입니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이 피상적이며 표면적인 모습을 하나님의 자녀들, 사역자들, 목회자들의 삶에서까지 볼 수 있습니다.  빛으로 밝혀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것이며  우리는 기도 통해서 그리고 회개의 삶을 살면서 이 빛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이런 신성한 빛의 부족한 부분을 인간적인 방법들과 기교들로 보완하려고 합니다. ; 기교있는 단어를 사용거나, 언쟁을 하거나, 말을 많이 하거나,  논쟁과 분쟁 등등입니다. 이런 모든 행동은 타락하고 잘난체 하는 자아 (Ego)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불필요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총독 앞에서도: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 ( 27: 14).  또한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습니다.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깎는 앞에서 잠잠한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 53: 7).

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의 육적인 에너지를 낭비합니까?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자주 피상적이며 어두워져 부끄러운 길 가운데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이렇게 부르시고 있는데 말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 5: 14, 15).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있습니까?

이것은 모든 그분의 자녀를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산 위에 있는 도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산위의 있는 도성이 그리스도 교회의 자리입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각 사람이 등불로써 등경 위에 올려져서,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빛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사고를 멈추게하고 도전하는 질문은 :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전해주기 위해 불을 밝히는 등불로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성령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 놓아 두십니다. 우리가 인지하던 못하던, 그 사람들은 빛을 주는 등불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 빛이 우리 중 누구에게서라도 발견되면 성령님은 즉각 그 사람을 등경 위에 높이 올려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 빛이 비쳐지도록 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광주리 밑에, 어두움 가운데 남아 있게 되고 우리 주변도 어두움 가운데 있게 될것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다시 영적 기초에 대한 내용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영적 기초들은 깊은 영적 삶을 살기 위한 것들이고, 표면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 효과적이고 결실과 열매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받게 하려 함이라” ( 15: 16).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제자가 되리라” ( 15: 8).

모든 각각의 세대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으십니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소망하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의 제자가 될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열매를 우리로 부터 기대하실 것입니다.

많은 영적 기초들이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우리 시대에 중요한 몇가지에만 집중하고자 합니다: 특히 각각의 영적 기초를 다른 차원으로 보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믿음, 기도, 깨어 있음에 대해서 나눌 때, 더 이상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피상적인 포인트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각 영적 기초에 관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구되는 깊이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그리스도라” ( 4:14-15).

이 말씀은 두가지의 단계를 보여줍니다. : 어린아이의 단계와 자신의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되는 영적으로 성숙한 자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신성한 사명을 맡기실 수 있는 성령의 빛을 받은 성숙한 자들, 자신의 책임을 깨달은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신뢰하므로 은혜와 기름 부으심을 함께 주시며 하나님의 임무를 맡기고 하나님 나라의 일 가운데 열매 맺을 수 있게 하십니다.

앞으로 드릴 영적 기초에 관한 설명을 잘 따라오길 원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인지해야 하고 우리의 삶에 확립해야 하는 일반적인 기본 토대임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빛으로 조명되는 것은 매우 필수적이고 중요한 기초입니다. 우리가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영적으로 실행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으로부터 유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 집중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하면 신성한 빛의 조명의 새로운 깊이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고, 생각하는 사람(thinker) 되어 우리 세대를 향한 책임을 맡을 있는 자들이 될수 있는가 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한 몇 가지 실제적인 포인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의로운 (a righteous life):

의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만한 성자/성인이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의로운 삶은 모든 것의 바탕입니다. 의로움은 죄인인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역사하심 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그분의 보혈로써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또 매일 매일, 진정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효과를 잃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말로써만 단순하게 회개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풀어주는 참되고 깊은 회개의 징후(sign)는; 멈추지 않는, 끊임없는 영적인 배고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충족되었다고 느낄 때, 즉 영적 굶주림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기억해야 할 점은: 이물질이 우리 속에 깊숙이 숨어 들어와 내면의 깊이를 닫아버려서  표면에만 머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는 그 어떤 것과, 주님을 향한 배고픔이 없게 하고 의로움을 향한 갈망이 없게 하는 질병이 우리 안에 있는지, 우리는 자신을 깊이 들여 다보고 그것을 뽑을 수 있도록 찾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5:6). 하루를 끝마치며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조용히, 침묵하며, 차분히 매일 회개를 하는 것이 이것에 도움이 됩니다.

2.빛 안에서의 (a life in the light):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 5: 11-14).

깊은 영적 삶을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인터넷에서 악한 것들/장면을 보거나 부적절한 말을 듣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잠언서에서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 17: 4).  

하나님의 자녀들이 내면 가운데 어둡고, 타락한, 부패한 것들을 감추고 있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회개 가운데 그것들을 빛 가운데로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어둠이 내쫓기고, 주님의 빛으로 교체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적절한 말을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들, 단어들은 악한 자가 우리 안에 어둠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증오, 분개와 분노를 키우고, 또는 누군가에 대한 용서가 부족하다면 그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영혼을 어둠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빛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루고, 어둠을 가져오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것을 끄집어 내야합니다.

어둠의 세력과 관련된 다른 것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세력을 드러내시고 쫒아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빛을 구하고 어둠을 드러내어 진정한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인내합시다.

사도 바울은이 데살로니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에 주목합시다:

너희는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데전 5: 5-8).

여기에서 우리는 빛이 절박하게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히 이 마지막 때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빛이 없으면 신랑이 오시는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어둠 때문에 그분이 오시는 시간을 분별하지 못 할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일입니까!

3. 영적 지식에 대한 갈망과 열망, 그리고 안에서 성장하는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기억합시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 1: 9-11)

골로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 1: 9-11)

제가 전하는 메시지의 대부분이 성경 말씀에 집중되어 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새로운 깊이로 들어설 필요가 너무나도 절실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갖고,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이 두 가지는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하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초대 교부들의 글을 포함한 영적인 책들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깊게 하고 분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런 책들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상황들과 비교하고 영적 교훈을 깨달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는 것(고전2:13)입니다:

다음의 성경말씀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그는 그것들을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 2: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