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에 대한 성경말씀들:
- 요한복음 15: 26, 27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 고린도전서 3: 16, 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고린도전서 2: 10 – 13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 고린도전서 12장-14장
- 고린도후서 13: 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 요한일서 1: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 요한일서 5: 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주요 주제: 인격이신 성령님
성령님은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신 위대하고 놀라우신 선물이십니다.
사도행전에서 다음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2:32-33)
이 말씀은 오순절 날의 일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세상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미지를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아들에 대한 이미지도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을 인격의 이미지로 그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능력이시지만 그분은 또한 인격이십니다. 삼위일체의 각 위는 인격으로서 구별된 역할을 하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유일한 하나님으로 완전히 연합되어 계십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삼위의 한 인격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도록 아버지께로 부터 오신 선물이십니다.
성령님은 ‘파라클레테(Paraclete)’라고 불리시는데, 내 옆에서 항상 함께 동행하시며 적으로 부터 나를 보호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또한 내 안에도 거하십니다. 즉 성령님은 내 안에도, 그리고 내 옆에도 계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영적 여정에서 내가 원수들과 직면하기 때문에 갈 길을 보여주시고자 내 손을 잡고 함께 걷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시5:8)
성경은 하나님의 길을 걷기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길을 방해하려는 대적들과 직면하게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대적들은 사단과 악의 능력들입니다.
로마서 8:26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
헬라어 원어에 따르면 이 구절은 바로 성령님의 사역을 묘사한 것입니다.: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의 의미는 내 길을 방해하려는 원수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내 손을 붙잡고 함께 걷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그분이 적을 밀어내면서 나를 위해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단은 내면의 영적 성장과 신성한 목적들을 향해 나아가려는 진정한 영적인 삶의 모든 걸음들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나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시며 내 길에서 원수들을 밀쳐내십니다.
원수와의 싸움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있는 장애물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중요한 기초들 중 하나가 바로 원수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며 원수의 전략을 파악하고 극복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전투에서 나를 도우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이 모든 면에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과 진정한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성령님에 대한 주제는 광대합니다. 이 주제를 단순화하기 위해, 다음의 5가지 제목으로 성령님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 성령님과 하나님과의 교제
- 성령님과 세상
- 성령님과 교회
- 성령님과 각 개인
- 성령님과 사역
1.성령님과 하나님과의 교제
베드로후서3:18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기도의 삶이 연약하고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자랄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알 수 없게 되고, 아들을 구세주, 주님 그리고 구원자로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분을 아는 지식이 자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갈 수 없으며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전해야 할 하나님에 대해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기억하고 있는 몇 구절들을 반복해서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면, 그분은 우리의 마음(heart)을 채우시고 우리는 그분과의 교제 안에서 기뻐하게 됩니다. 그분이 우리의 영을 깨우고 우리의 입술을 진리의 메세제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그분에 대해 말하려고 입을 열때면 멈출수 없게 될 것입니다.
- 성령님은 우리에게 인격이신 아버지를 계시해 주십니다..
로마서 8:16은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내 생각으로 알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나의 영에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깨우고 우리의 눈을 열어 하늘의 아버지를 알게하십니다. 이것은 그저 생각이나 말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령님의 신성한 내면의 일하심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성령님이 사랑과 부드러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한 아버지를 인격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실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안식과 안정감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강하고 우리를 돌보시는 신실한 분임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 어떤 것도 우연히 발생하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나 악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우리는 그런 상황에 넘겨지거나 홀로 남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실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원수는 우리의 이해와 눈에서 이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버지를 모르고 그분의 선물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하늘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1:17)
매일마다 우리를 위한 새로운 선물들이 있습니다. 말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예레미아 애가3:22-23). 그분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참으로 좋은 선물들을 주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늘의 아버지를 알고 신뢰한다면, 성령님의 일하심을 통해 우리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는(약1:5)”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간구하고 받을 것입니다. ; 지속적으로 더 구해서 더 많이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신비임을 알게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경험한다면 우리의 삶은 변화될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성령님은 우리가 아버지를 알아가도록 도우십니다. 성령님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임을,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좋은 선물들을 준비하고 우리 가까이 계시는 분임을 지속적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상기시키십니다.
- 성령님은 또한 예수님이 주권자 되심을 우리에게 드러내고 선포하십니다.
고린도전서12:3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누리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분이 점점 더 내 삶의 주인이 되실 수록 나는 더욱 더 그분의 뜻을 온 마음으로 따르고 싶은 열망이 생기며 그분의 뜻이 내 기쁨이 되게 됩니다.
그분은 나에게서 자유를 빼앗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파괴하는 가짜 자유만을 가져가시고 나에게 명예와 존엄을 주는 진정한 자유를 하락하십니다. 탕자는 자신을 파괴 시키는데 그 자유를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자유의 어떤 부분은 독이 될수도 있습니다.; 원수와 악의 능력들로 부터 보호 받기 위해서 이 독의 부분에서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기적이고, 세상적이며, 관능적이고 사악한 자유를 사용한다면(야3:15), 적의 함정에 빠져 파괴될 것입니다. 내가 이런 잘못된 자유를 사용할 때면 성령님은 그것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항해하고 있는 배의 선장이신 주님이 이것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주되심 안에서만 진정한 해방과 자유가 있습니다.
모든 주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지만, 오직 예수님만은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모든 주인들은 지배하지만, 예수님은 존중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요15:5)”
성령님은 또한 인격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자라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속사람이 예수님의 형상를 닮아가도록 빚으십니다(롬8:29). 따라서 우리 각 사람 안에서는 그리스도가 독특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형성됩니다. : 기쁨으로 가득 찬 그리스도, 평화로 가득 찬 그리스도, 온유한 그리스도 등등. 이 모든 다양한 속성은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게 있지만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의 다른 속성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실에 속한 자들, 왕의 자녀들, 하나님의 형상,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지닌 왕자와 공주들과 같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형성되실때, 우리 주변의 세상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보고 알게 될것이며 그분을 찾고 사랑하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없는 단순한 말로만 예수님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우리의 삶과 얼굴에서 보여지는 살아있는 간증이 우리의 메세지가 될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4:12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2.성령님과 세상
우리는 현재 악한 능력의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요일5:19). 사단이 패배하고 정복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단의 패배의 완전한 선고는 마지막 날에 집행될 것입니다.
사단은 그의 패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컨트롤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속일 수 있습니다.
사단은 세상의 임금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14:3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우리도 사단에게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이 세상의 주관자이며 임금이지만 사단은 우리와는 관계할 바가 없으며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구속(속량)받은 자들”,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이사야35:10)”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그런 사람들을 방해할수 없으며 심지어 그들 앞에서 바다도 길을 내어 건너갈 수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머리에는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에 사단이 그들을 슬프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영원한 기쁨이 세상의 슬픔과 괴로움을 쫒아 버립니다. 그들은 소금입니다.; 어디를 가던지 보전하고 정결하게 합니다. 왜나햐면 그들의 삶 안에는 사단이 있을 자리가 없으며 오직 성령님만이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주변의 분위기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부패와 더려움의 냄새 대신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며 사명입니다. 우리 스스로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은 15:5에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영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과 교제하는 만큼,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 그분이 거하실 곳이 있는 만큼, 그분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또한 우리를 통해 세상을 정화시키십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이 거룩해지면서 동시에 우리는 세상의 거룩을 위한 도구이자 채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삶이 순결하고 거룩하며 악과 정욕으로 더럽혀 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4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주님은 우리가 세상의 부패로 부터 나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신성한 불입니다.
이 세상에는 부패와 죽음이 있습니다.
성 마카리우스는 불, 평화, 그리고 능력의 성령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성 안토니도 불의 성령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의 자녀들이여, 내가 받은 불같은 성령님을 받으십시요. 그러면 계명이 쉽고 가벼워질 것입니다. 구하십시요. 여러분의 영적 아버지로서 나도 여러분이 불의 성령님을 받도록 여러분과 함께 구하겠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성장하고 있는 수사들인 그들에게 여전히 신성한 불이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신령한 불이 붙어서 일어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딤후1:6)”
또 이렇게도 기록했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데전5:19)”
우리 주변의 세상은 얼어 붙을 정도로 차갑게 식어가며 익사하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채우십시요.; 당신 주변의 차갑게 죽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길을 찾게될 것입니다’ (사로브의 성 세라핌)
하나님으로 채우십시요.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불이십니다. 그분이 불일듯 일어나시도록 해야하고 소멸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이 차갑게 죽어있고 어둠으로 가득차 보이지만 불의 성령님을 지닌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이것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둠 가운데서 빛을, 차가움 가운데서 따듯함을 발견합니다. ; 패배로 둘러쌓인 세상에서 능력과 승리를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4:4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구름기둥으로 앞서 가셨던 성령님이며, 낮에는 빛으로 밤에는 불이셨습니다. 그분은 구름의 기둥으로 덮으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발걸음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밤에 빛을 비추고 그들을 보호 해 주신 불의 기둥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출13:21)
성령님은 불의 기둥이십니다.
따라서 사로브의 세라빔 성자와 같은 분들은 러시아의 얼어붙은 산에 올라가면서도 추운 것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그에게 어째서 춥지않은지 묻곤 했습니다. 제자들의 눈에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는데 그는 자신 안에 계신 성령님이 따뜻함을 주시기 때문에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광야에 사는 많은 수사들이 한겹의 옷을 입고도 추위나 더위에 고통받지 않은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추위 가운데서는 따뜻함이 되시고, 더위 가운데서는 그들의 바람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부드러운 위로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하고 우리의 길과 걸음 걸음을 밝히십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이 허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제는 그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알아야하고 그분과의 교제에 깊히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3.성령님과 교회
교회에서 하는 기도들 가운데 우리는 이렇게 간구합니다:
‘오 하늘의 왕, 진리의 영,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사람을 채우시는 분. 당신은 모든 선함심의 보고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은혜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며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이것은 성령님이 능력뿐 아니라 인격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은 마음을 위로하시며 두려움과 걱정,깨어짐을 제거하십니다. 성령님은 심지어 미래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8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사도바울은 미래에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 확신했습니다.
성령님은 또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달하시는 분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성령님이 교회 안에 그분의 능력과 역사하심, 인도하심으로 거하신다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가서 6:10과 같이 될것입니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교회는 능력, 정결과 아름다움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교회)는 영광스럽습니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엡5:27)’. 신부는 늙은 모습이 전혀 없으며 생명, 아름다움과 존귀로 가득합니다.
성령님은 삼위의 한 인격으로서 그리스도가 오셔서 교회를 단장된 신부로 맞이하도록 교회를 신부로 준비시키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교회가 신랑을 위해 준비되도록 자각하고 깨어서 지속적인 성결과 정화 가운데 있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한 가족으로 연결시키십니다. :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12:13)
우리가 성령님께 우리 삶에서 일하시도록 기회를 드리면 그분은 우리를 성경에서 “하나님의 권속(엡2:19)” 이라고 부르는 한 가족으로 세워 가십니다. 이것은 사교적이거나 서로에게 다정한 수준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며 각 지체들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 마음(hearts)들을 연결시키시는 성령님의 특별한 일하심입니다. 그분은 서로를 향한 긍휼함을 우리 안에 불어 넣으셔서 한 사람이 고통받을 때 다른 사람들도 그 고통을 느끼게 하십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고전12:26).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님의 진정한 역사로 비롯된 이런 연결됨과 연합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설명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하나님이 거하시고 천사들과 성인들도 함께 하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집으로 만드십니다.
여기에는 기도와 예배, 만남, 설교와 사역이 포합됩니다. 성령님이 임재하시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영적 분위기를 바꾸시고 지체들이 하나님의 집의 한가족이 됩니다.
4.성령님과 각 개인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부르심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부름심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기뻐하게 하십니다. 그 부르심 안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심지어 생각지도 못했던 바램과 열정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신성한 계획에 따라 우리 안에서 그 부르심을 이루어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능와 은사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특별한 부르심을 위한 성령님의 기름부으심도 받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때로 우리의 삶을 우리의 생각으로 계획하는 것입니다. 그 계획은 좋은 소망(갈망)들 일수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재능과 은사들은 없을 수 있으며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그 길을 걷기 시작할 때면 우리 자신에게 조차 낯설어질 수 있습니다. ; 낙담하고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님과 교제하며 매일 매일 그분과 동행하면 그분은 우리의 발걸음 걸음을 인도하시며 우리의 생각을 밝히시고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를 위해 그분이 준비하신 것들을 발견하도록 도우십니다. :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9-10)
우리는 자주 이 말씀을 하나님이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들에 대한 참고 구절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구절은 그분이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내시고자 한다고 계속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을 얼굴과 얼굴로 보듯 명확히 볼수 있기 때문에 계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를 위해 하늘의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것을 우리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 우리를 내어 드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전에 보았거나 들었던 것들을 초월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꿈을 초월하는 것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자녀들을 위해 그들이 기대하고 꿈꾸는 이상의 것들을 준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바로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가진 최고의 꿈이나 가장 높은 이상보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들이 더 좋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들은 참으로 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며 내 주변의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나도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내 자신이 축복이 되게 됩니다.(창12:2b)
5.성령님과 사역
성령님은 사역가운데 역사하시는 신성한 능력이십니다. 그분은 사역자들의 내면의 삶을 건축하셔서 하나님의 성직자에 걸맞게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성령님은 사도바울이 사역자에 관해 언급한 명령을 우리가 성취하도록 도우십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진실한 일꾼임을 보이려고 많은 고난과 어려움과 괴로움을 견디며 두들겨 맞고 갇히기도 하며 난폭한 사람들에게 에워싸이기도 하고 고된 일에 시달리며 잠도 못자고 굶주려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님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정의를 무기로 삼고 영광을 얻든 수치를 당하든, 욕을 얻어먹든 칭찬을 받든 항상 하나님의 일꾼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사기꾼과 같은 취급을 받지만 사실은 진실하며 알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우리가 다 죽어가는 사람 같지만 이렇게 살아 있으며 매를 많이 맞았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슬퍼하는 사람 같지만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지만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고후6:4-10현대인의 성경)
성령님은 우리가 우리로 새언약의 일군이 되기에 충분하도록(고후3:6) 돕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후서 3장에 기록된 것처럼 성령님은 우리가 은혜와 생명, 메세지와 영광의 일군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새언약의 사역은 의와 은혜, 생명과 영광의 사역입니다. 따라서 이런 메세지를 전달하는 사람들은 그런 수준에 있어야 하며 새언약의 일꾼(사역자)으로서 우리 자신의 삶에 이런 것들이 반영되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가 사역하는 사람들이 성령님의 생명과 접촉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님은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분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위로 끌어 올리시고 고민하는 자들에게 위안을 주시며, 길 잃은 자들에게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이렇게 될때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하는 생명과 열매가 있는 사역이 될것입니다.
성령님의 채우심(성령충만)
성경 말씀들
- 에베소서5:15-21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 누가복음11:9-13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에베소서의 말씀을 읽으면, 성령님으로 채워지는(성령충만)것은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 분명합니다.
개인의 영적인 삶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기도의 삶에서,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교회에서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사역을 위해서 성령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앞에서도 이미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하면 성령충만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님으로 채워지고, 지속적인 채움의 상태를 유지할수 있는가에 대한 기초적인 하이라이트를 살펴 보겠습니다.
성령님의 채우심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주요 조건이 필요합니다.
- 자기비움
- 순복(항복)
- 신뢰
1.자기비움
컵에 물을 채우고 싶다면, 물을 채우기 전에 먼저 컵을 비워야 합니다. 만약 다른 것으로 이미 컵이 채워져 있다면, 그 컵은 물로 채울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선물이신 성령님으로 채워지기를 원한다면 나는 먼저 이 채우심을 위해 내 내면 안에 있는 공간을 비워야 합니다.
하지만, 먼저 내 자신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완전한 충만을 갈망하는지, 혹은 작은 부분에서만 채워지기를 원하는지 내 마음을 감찰해야 합니다.
나를 비우고자 하는 마음이 진심이고 완전한 만큼, 이 채워짐의 분량 또한 매우 크고 진실될 것입니다.
이 채우심은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위에 언급한 에베소서 구절을 원어로 보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be filled)’ 의 동사는 진행형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채워지기 시작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다시 반복해서 채우고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내가 성령님을 더욱 원한다면 하나님의 선물이신 그분이 내 안에 풍성하게 흐르시도록 내 자신을 완전히 비워야합니다. 요한복음 3:34 에서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더욱 흐르실수록 나의 내면을 더욱 깊이 만지시며 나를 변화시키십니다.
동시에, 나는 그분을 나와 동행하시고 내 옆에서 함께 걸으시는 참된 인격으로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시편16:8에서는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원수가 막을때 길을 내시고, 내 걸음을 넓히십니다(시18:36).
그분은 내 발걸음에 빛을 비추시며, 넘어졌을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좌절하고 낙담할때 회복시키시며, 외로울때 가까이 다가오시고, 상처받았을때 치유하시며,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때 위로하십니다.
그분은 위로의 동반자입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내가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죽은것 같이 느껴질때 나를 소생시키십니다.
그분은 생명으로 흘러 넘쳐서 죽음을 삼키시고 어둠의 능력들을 쫒아버리십니다.
진정으로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인격이신 성령님을 원한다면, 내 자신을 완전히 비워야합니다.
실제적으로 자신을 비우는 과정은 진정한 회개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 내 안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 때때로 걱정이나 얽매임들, 그리고 물질에 대한 것들이 우리 내면의 공간을 크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의 부으심과 채우심이 방해를 받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다음의 말씀을 기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베전5:7)”
- 또 어떤 경우에는 나의 생각과 감정이 다른 사람으로 채워져 있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이 내 가족 구성원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감정적으로 묶일 정도로 그들을 지극히 사모할 지경에 이르러서 자신의 내면을 채우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경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 고 했지만, 동시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라고도 말씀합니다.
이것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내 존재를 채우고 내 인생의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혼적인 사랑이라면 회개해야 하고 이런 혼적인 사랑을 버릴 수 있도록 성령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내 안에 신성한 진실된 사랑을 부우실 수 있게 말입니다.
- 혼적, 혹은 감정적 관계들이나 묶임들은 가족들 안에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반대 이성의 사람들과 엮인 여러 다른 감정의 묶임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것 또한 나의 내면의 큰 공간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는 뭔가 잘못된 걸 인식할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두고 싶지만 그렇게 할 능력이 없는 것과 처음부터 그만두고 싶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감정의 묶임을 진심으로 끝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과 전심으로 끝내고 싶지 않고 잘못된 것이라고 완전히 확신하지도 않기 때문에 타협하려고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타협하고 있다면 이것은 내가 이런 관계들을 내 삶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잘못된 묶임들에서 나를 자유케 해달라고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간구할 필요가 있습ㄴ니다.
요약하면: 성령님의 채우심을 계속 받으려면 완전한 자기비움이 필요합니다.
이런 자기비움은 진실된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서 성령님께서 나의 내면을 살피도록 기회를 내어 드리고 사람들이나 어떤 것들을 향한 집착이나 얽매임, 걱정이 있는지를 보면서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묶임들을 제거해 달라고 성령님께 도움을 구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제거할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그것들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2.순복(항복)
순복이란 하나님의 손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모든 것 위에 계심을 깨달으면서 그분의 뜻에 항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자신의 연약함때문에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만약 내가 사단이 들어 올수 있는 특정한 문들을 열었다면 사단에게 내 삶을 방해할 기회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연약함 때문이건, 사단이나 환경 때문이건 나는 이 모든 것들 위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시는 위대한 아버지의 신실하신 손이 있음을 여전히 보아야 합니다.
내가 실수를 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신뢰하고 안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강한 손이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실수들이 내 문제들의 원인이라 할 지라도 내가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그분이 모든 문제들을 주관하시고 해결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 자신을 비난해서도 안되고 자만해서도 안됩니다.
올바른 태도란 내가 전심으로 진실로 회개하는 한, 내가 문을 열었기 때문에 사단이 들어오거나 특정 시간 동안을 통제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모든 일들이 나에게 선으로 이루어지게 하실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는 잃어버린것 같아보이지만 나중에는 얻게될 것입니다.
욥의 이야기는 이런 관점에서 잘 알려진 예입니다.
욥기서는 우리를 대적해서 사단이 어떻게 고소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때로는 사단은 허락을 받습니다. 사단은 때로 우리를 멸망시킬 기회를 엿봅니다. 그결과 상황은 다소 어두워보이고 부정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욥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둡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손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상황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음에도 말입니다. 그런 후 어떤 시점이 되면 하나님은 손을 펼치셔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배로 회복시키시고 모든 것들을 고치십니다.
욥은 소유물을 회복했고 아들들과 딸들을 다시 얻었습니다. 그의 명예도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얼굴을 들게 하셨고 하나님이 욥의 친구들을 용서하시기 위해 욥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욥42).
우리는 주님께 순복하고 그분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신실한 손 안에서 안식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우리는 사망의 그늘의 골짜기, 겸손과 깨어짐의 골짜기, 두려움의 골짜기, 외로움과 버려짐의 골짜기를 지나갈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이 모든 골짜기들은 우리가 새로운 명예와 새로운 높은 단계들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신성한 훈련들입니다. 우리는 마치 적의 손에 넘겨진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23:4)
이런 순복은 성령님이 우리를 채우고 흘러 넘치도록 기회를 내어 드립니다. 이런 충만함은 잃어버리거나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명령 이후에 다음의 말씀이 따라옴을 주의해야 합니다. :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어두움, 어려운 환경들, 문제를 야기시키는 실수들, 욥의 경우처럼 사단으로 부터의 공격과 비방 가운데서 감사를 표현하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에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참된 회개의 삶과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는 신성한 손이 내 삶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게 합니다. 그 결과 오늘 어두워 보이는 것이 내일 밝게 빛날 것이고 오늘 좁아 보이는 것이 내일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순복과 감사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에 문을 열게 하는 중요한 것들입니다.
순복과 감사의 결여는 성령님을 슬프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속적인 성령충만의 상태에 있지 못하게 되고 연약해 집니다.
진정한 순복의 사인은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인내하면서 신성한 그분의 손을 보고 깨닫도록 내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과거의 상황을 뒤돌아보고 생각해 보면 수없이 많은 구덩이에 빠지거나 여러 다른 계곡을 지나 왔음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전보다 더 강해져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사단이나 상황들, 사람들 혹은 내 자신 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자신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성경에서 아말렉(출17),가나안 사람이라 불리는 내 길을 막아 서려는 악한 사람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교활하고 속임수 많은 계획과 함정, 그물(야4:7)을 가진 사단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예기치 않은 일들과 상황들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항상 위로 끌어 올려져 안정감을 느끼고 평화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8,39) ”
사도바울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판토크레이터(우주를 지배하시는 전능자)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올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서 조차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순복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려운 상황들을 허락하지 마시라고 요청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함을 따라서 우리 마음대로 하나님한테 지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그분이 아는 것처럼 우리는 알 수도 없고 그분이 보시는 것처럼 볼 수도 없습니다. 사사기 14:14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이것은 신성한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사단에게 조차도 의로우신 분입니다. 따라서 만약 사단이 우리가 잠자는 순간의 기회를 포착했다면 의로우신 하나님은 사단에게 “안된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나를 훈련시키실 것이고 극복하도록 도우실 것이며 영적으로 강해지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 도다.(시144:1)”
따라서 나는 하나님께 상황들을 바꿔달라고, 원수를 제거해 달라고, 내 연약함을 없애달라고 간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분께 감사하고, 순복하면서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이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 고통의 상황들, 사단과의 전투의 상황들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가 사단을 쫒아내고 우리에게 힘을 달라고 간청할 수는 있지만 불평하고 투덜거려서는 안됩니다.
3.신뢰
자신을 비우고 순복하는 훈련의 과정을 이런식으로 통과한 후에는 누가복음11:13에서 읽은 것과 같이 성령님의 선물을 간구해야 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늘의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는 누구라도 이 선물(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에베소서 5장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성령님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분명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명령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의 내면을 비우고 순복하고 그분 안에서 안식하는 것을 배우고 난 후에 그분의 약속과 명령에 따라서 나는 그분께 채우심의 선물을 달라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성경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서 주님께 나간다면 간청한 것을 주실 것도 믿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구절에서 이렇게 기록된 것과 같이 말입니다. “구하라 그러며 너에게 주실것이요.” 그분은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느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삶은 감정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합니다(고후5:7). 오직 신뢰해야 합니다. 필요한 조건들을 완수하고 선물(성령)을 구한다면, 반드시 나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성령님이 흘러가시는 통로들:
3가지 주요 통로들이 있습니다.
- 기도의 삶
- 교회의 삶
- 사역의 삶
A.기도의 삶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성령님은 기도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규칙적인 기도의 시간과 조용한 시간들을 갖는 것을 배우는 만큼 성령님은 내 안에서 흐르실 것입니다. 나는 선물을 받고 또 선물을 받을 것이고 채워진 후 또 채워질 것이며 능력에 능력을 얻게될 것이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속 흐르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님의 채움심을 진정으로 소망한다면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기도의 삶을 가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성령님께서 흐르실 수 있는 주요 통로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흘러가시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구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시편)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5:19)”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흘러넘치기 시작할때 나의 영적인 삶 전체가 크게 변화될 것입니다.
만성적인 영적 문제들과 약점들은 사라지고 반대되고 긍정적인 자질들과 강건함을 받게될 것입니다. 나를 혼동시켰던 영적인 질문과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문제들이 풀어질 것입니다.
B.교회의 삶
교회의 모든 성례는 성령으로 채워지는 통로들입니다.
여기에는 회개, 고백, 성만찬, 그리고 신성한 에배의식들과 기념일들에 참석하고 동참하는 것들이 포함됩니다.
또한 영적인 모임들에 참석하고 사랑 안에서 연결된 교회의 일원인 형제, 자매들과의 친교도 이런 통로에 포함됩니다. 이런 모임을 나의 일부분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을 나의 가족으로 느껴야 합니다. 찬양과 기도, 메세지를 듣는데 있어서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교제의 통로라고 불리는 성령님의 통로입니다.
교회 생활을 통한 성령님의 또 다른 통로는 성자들(믿음의 선진들)과 천사들과의 교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자들과의 교제에서 힘을 얻은 것을 경험했습니다(히12:1-2). 사실 이 힘은 성령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성자들(믿음의 선진들)이 우리를 위해 중보할때, 하나님은 성령님의 능력과 힘을 허락하심으로 응답하십니다[1]. 때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우리가 그 문제를 뛰어 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세상 문제들이 아니라 영적인 삶과 관련해서 성자들의 기도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그분들이 맛본 영적인 풍부함과 달콤함을 동일하게 맛보기를 갈구해야 합니다.
C.사역의 삶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잠11:25/새번역)
“he who waters will also be watered himself” (Proverbs 11: 25).
다른 사람들을 향한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한 나의 진실된 경험을 나누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를 더 생각할 수록 더 많은 성령님의 선물이 내 안에 흐르게 됩니다. 성령님은 나에게 생명수를 주셔서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 주게 하십니다.
많이 흘려 보낼 수록 나에게 생명수가 더욱 부어질 것입니다. 줄수록 더 받게됩니다(눅6:38). 이것은 신성한 신비입니다. 이 땅의 물질 세계에서는 주면 줄어들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나눠주면 오히려 늘어납니다.
정리하면, 성령의 충만한 채우심을 받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있고 이 채우심의 선물을 계속 받을 수 있는 3가지 통로가 있습니다.
조건은: 자기비움, 순복 그리고 신뢰입니다. 그리고 통로는: 기도의 삶, 교회의 삶, 사역의 삶입니다.
+
[1]성령님은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보다 앞서간 성자(믿음의 선진)들 안에 계신 성령님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해 성령 안에서 서로 교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