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아버지들로부터 온 하이라이트

요즘 시대는 성경을 읽는 접근 방법들이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서클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편적인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가. 각 구절들과 단어들을 묵상하며 성경을 천천히 주의 깊게 읽을 것을 강조하는 접근법: 양보다는 질에 중점을 둡니다. 이 접근법은 모든 단어를 주의 깊이 묵상하고 이해해서 그 이해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매일 한 장이나 짧은 문단을 읽는 것을 선호합니다.

나.  또 다른 접근법은 학구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동방과 서방에 더 보편적으로 넓게 퍼진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역사적, 지리적 배경과 원어, 이름의 의미들, 숫자와 상징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강조하는지 등을 공부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는데 역점을 두는 접근방법입니다.

이런 방법들은 모두 좋은 축복된 방법들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접근법은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과 교제를 하는데 있어 빈곤하게 했습니다. 이런 빈곤함과 함께 성경의 구절들을 해석하고 이해할 때 개인적 선호도와 확신에 근거해서 해석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보호장치는 기도하는 분위기로 영(spirit)의 등불을 밝혀 말씀을 읽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해와 묵상이 사람의 혼(soul)이나 개인적 선호도에서 나오지 않고 영의 샘으로부터 흘러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접근방법을 따르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 문단들은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느헤미아 8:1-12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학자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책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랜 시간 낭녹하는 동안에 예배와 기도,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읽는 말씀은 커다란 깨달음과 통곡을 가져왔고 영적인 기쁨으로 바뀌게 했습니다.

지적인 분석에 근거한 두 번째 접근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신적 활동에만 의지하고 생각 아래 두게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제한하게 되고 그 의미와 실제를 좁은 영역 안에 가두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성경의 한 책을 철저하게 연구한 후에는 그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시 읽어도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제약들 외에도 넓은 차원에서, 우리가 만약 말씀의 의미와 생각을 특정한 방향과 해석으로만 국한시키고 사람들에게 미칠 넓은 영향력을 제한해 버린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세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지적 능력과 은사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역사(히4: 12)할 수 있겠습니까?

시편 119:96 말씀은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과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제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시대, 어느 곳에서나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합하고 유효합니다.  초보자와 영적으로 성숙한자, 교육받지 못한 자와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교육받은 자, 모두에게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 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말씀을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그 속의 신비와 의미들을 이해하게 되고 다가올 세대까지 지식이 점진적으로 계속 자라게 됩니다. :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13:12)”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1.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어떤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 다루었을까요?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말씀에 대한 깊은 지식과 골로새서 3: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진 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분들은 그들 세대에 모든 문제들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귀중한 인도자였습니다. 세계 종교 공의회에서 기둥과 같은 분들이었으며 그분들의 참석이나 조언 없이는 어떤 회의도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2.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다루고 관계했으며 말씀에 대한 그분들의 확신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분들은 하나님 말씀의 신비한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생각의 활동이나 혼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 내면 안의 역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이 신비한 일하심은 그 차원과 의미가 매우 넓었습니다.

초대교회 아버지들 삶에서 나타난 몇 가지 하이라이트를 통해 하나님 말씀의 신비한 역사하심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딤후3:16)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그분의 숨결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믿음으로 읽었으며, 그렇게 읽을 때 하나님의 숨결이 자신들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소생시켰고 뼈를 튼튼하게 했으며 영의 불을 지펴 혼의 목마름이 채워지고 영원한 생명으로 가득 채워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분들은 예배의 자세로 서있는 동안에 성경의 책들, 특히 복음서를 읽곤 했습니다. 말씀을 예배의 방식으로 읽을 때는 은혜와 말씀의 선물, 하나님의 생명을 받기 위한 준비로 엎드려 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soul) 장소를 정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아버지들의 신념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내면을 정결하게 하고 순결하게 합니다.  이것을 설명해 주는 어떤 수사에 대한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수사가 자신의 영적 아버지에게 가서 말씀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으니 말씀을 읽는 것이 다 무익하고 필요 없는 것 같다고 불평했습니다. 수사의 영적 아버지는 그에게 통에 구멍을 뚫어서 가져오게 한 후에 물을 채워서 멀리 갔다가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그렇게 반복하게 한 후에 물었습니다:  “통 안에 물이 있느냐?   수사가 대답하기를:  “물이 다 세어버리고 없습니다.”

그러자 영적 아버지가 그에게 통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고 했습니다. 그가 통 안을 자세히 보니 처음에 있었던 모든 먼지와 얼룩이 다 사라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영적 아버지가 계속 말씀하시길: “아들아, 이처럼 타락한 혼(soul)은 생명의 물을 간직하거나 하나님 말씀의 신비들을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단다.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은 구멍이나 틈이 없어질 때까지 혼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신단다. 한 사람이 이 일을 규칙적으로 계속 해나가면 영의 생각들이 하나님 말씀의 위대한 신비들과 그 말씀 뒤에 감추어진 보물과 뜻들을 깨달아 이해하게 되고 빛 가운데로 이끌리게 되는 거란다.”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면이 정결하게 되는 것 이외에도 말씀을 크게 소리 내서 읽을 때 예배의 장소도 정결하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들은 예배와 말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통해 장소들을 어떻게 정결하게 하는 지를 배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spirit) 양분인 만나입니다.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말씀을 “감추어진 만나’, 즉 영에 영양을 공급하는 신비한 음식이며 영을 살아나게 하고 성장하게 돕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씹어 먹는다’고 표현했습니다.육신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규칙적으로 음식을 먹는 것처럼 우리의 속사람도 성장하기 위해 음식이 필요한데 속사람의 음식은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아버지들에 따르면 말씀을 씹어먹는다는 뜻은 말씀을 규칙적으로 진지하게 읽고 이해 유무와 상관없이 계속 읽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분들은 성경의 주석이나 해석을 참고하지 않고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설명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구약과 신약에서 늘 동일하기 때문에 만약 말씀에서 어떤 특정한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원한다면 그 단어가 쓰여진 성경의 여러 다른 구절들에서 그 의미들을 찾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말씀을 계속적으로 읽고 씹어먹었기 때문에 그분들 앞에 성경 전체가 일관성 있게 완전한 문장으로 열려 계시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조언을 구하는 질문들에 대답할 때나 이단에 반박할 때에도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신, 구약에서 관련된 성결 구절들과 문구들로 응답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의심들, 마음의 어둠과 육적인 지혜들이 사라졌습니다.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또한 성경의 여러 책들을 마음 속 깊이 암기했습니다. 그분들의 전기를 보면 자주 이러 이러한 아버지는 신약 전체와 구약의 책 몇 권을 마음으로 외우고 있었고 혹 어떤 영적 아버지는 서신서와 복음서, 예언서와 시편을 암기하고 있었다고 쓰여있습니다.

성경은 그분들의 영양분이었고 지루함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씹는 음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의  받기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성경, 특히 선지서 말씀들을 먹는 것을 통해서 예언의 영을 받는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신약에 따르면, 예언의 영은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고전14:3).

따라서 예언의 영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삶에 대한 올바른 그림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덧붙여서 선지서(예언서)는 영적 통찰력과 분별력을 얻게 합니다.  영적인 접근에 대한 생각과 차이가 학파마다 증가되고 있는 지금의 우리 세대에서는 이런 올바른 분별력이 너무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혼란스러운 문제들을 판단하고 분별하게 하는 신령한 빛이 필요합니다.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2:15)

성자 시누다(Saint Shenouda: 348-466 AD)의 전기를 보면 초대교회 아버지들의 하나님 말씀과의 교제, 특히 예언의 성령님과의 교제에 관한 놀라운 신비들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관련된 이야기들 중 하나를 소개하면 형제들이 선지서의 책들을 읽고 있을 때 파더 시누다는 각 책의 선지자가 와서 형제가 선지서를 다 읽을 때까지 그 옆에 서있다가 읽기를 마치면 옆에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일이 말라기 선지서를 읽을 형제의 차례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밤새도록 말씀을 읽느라 피곤했던 그 형제는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말라기 선지자는 그 형제를 떠나지 않고 계속 옆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에스겔 선지자가 파더 시누다에게 부탁했습니다. : “ 말라기 선지자가 우리와 함께 앉을 수 있도록 형제를 깨워 말라기서를 끝마치도록 해주십시오.”  파더 시누다가 그 형제를 깨워 말라기서 읽는 것을 끝내게 했습니다. 그러자 말라기 선지자가 나머지 선지자들과 함께 앉은 후 파더 시누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경이로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초대교회 아버지들의 삶의 깊이, 그리고 선지자들이 선지서를 쓰도록 영감을 주었던 예언의 영을 받기 위해 말씀을 읽는 동안 각 책의 저자인 선지자의 영을 어떻게 초대해서 함께 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어떤 영적 아버지라도 성경의 구절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 있을 때면 그 책의 저자에게 이해를 도와달라고 구하곤 했습니다. 이런 일은 보이는 방법으로 혹은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자주 일어났습니다!

영적 갈급함과 그리스도처럼 변화됨

초대교회 아버지들의 말씀과의 교제에 있어 중요한 것들 중에 하나는 말씀에 대한 그분들의 열정과 사랑은 깊은 영적 갈급함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그분의 뜻과 길들을 알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망,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고자 하는 갈망과 그리스도의 형상이 자신들 안에 형성되기를 사모했습니다.

따라서, 그분들은 이런 내적인 변화에 대한 사모함 없이 그저 영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 혹은 논쟁할 목적으로 성경에 대해 물어보려는 사람들에게는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에게 이런 사람은 세상의 방법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로 변화됨이 없이 자랑하고 뽐내기 위해서, 심지어 세상의 사람들이 거래하듯이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성경의 지식을 원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우리가 지금 하듯이 생각 속에 지식을 받기 위해서 말씀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을 갈망했고 하나님 알기를 원했으면 말씀을 통해 그분의 길들을 알고자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말씀을 읽을 때, 나는 책 페이지에 싸인 아기 예수를 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아버지들이 살았던 방식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분들의 사랑의 크기입니다.

초대교회 아버지들의 말씀을 읽는 방법들

실질적인 면에서 초대교회의 예배자들은 어떻게 그들의 매일의 영적인 삶에서 말씀을 다루었는지 나누고자 합니다.

12가지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1) 보통의 일반적인 방법
하나님께서 매일 상황을 통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그냥 읽으면서 문장이나 장을 검사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읽는 성경말씀과 여러분 자신의 현재 상황을 연결시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때 말씀이 열려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2) 명상묵상
시편119:15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여기에서 쓰인 “묵상”의 히브리 원어: See-akh = 숙고하다, 이야기하다,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다, 즉 소리내어 말하다.  이 단어는 성경 전체에 20번 나오는데 기도의 책인 시편에서 14번 나옵니다.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기서 쓰인 “묵상”의 히브리 원어: ha gah à haw gaw à murmur(중얼거리다)
성경 전체에서 25번 나오는데 시편에만 10번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말씀을 여러 번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 짧은 기도를 통해 말씀이 속사람 안에 깊이 내려가게 함 (정결, 깨달음, 변화의 다양한 역사가 풀어짐)

3) 많이 읽기
한 자리에 앉아서 여러 장 혹은 책 전체를 읽는 것을 선호합니다.

여기서의 목적은:

– 책 전체에 대한 아이디어, 즉 서로 다른 상항에서 하나님이 전달하시는 메시지와 주제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 성경 전체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지속적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 덧붙여서, 성경의 각 책들은 특별한 이름이나 제목 없이 저자의 이름만 (이사야, 예레미야, 마가, 요한) 있습니다. 이는 각 사람의 이해에 따라 각 사람이 제목을 정하도록 남겨 놓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로 인해 다른 제목과 주제의 여러 책들로 이루어진 신성한 도서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필요나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거기에 해당하는 책을 꺼내어 다시 읽고 읽으면서 당면한 상황에 맞은 올바른 방향을 발견하게 됩니다.
– 또한, 말씀을 오랜 시간 읽는 것은 생각을 새롭게 하고 혼을 정결하게 하여 내면의 치유와 회복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3:16)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 도다” (시107:20)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전4:22)

4) 예배하듯 읽기
성경의 각 책들은 저자들(선지자, 전도자, 역사가, 시인 등)이 받은 기름 부으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이해하고 행한다면 그 사람은 그 특별한 책 가운데 보존된 동일한 기름 부으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 선지서를 규칙적으로 읽으면 –> 예언적 기름 부으심
– 복음서를 규칙적으로 읽으면 –> 사도적 기름 부으심
– 역사서를 규칙적으로 읽으면 –>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의 길들을 배움
– 시가서를 규직적으로 읽으면 –>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흥미롭게도 그분들은 특별한 말로 말씀 읽기를 마무리 했는데, 마무리하는 말은 책들 마다 달랐고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그들의 깊은 이해와 말씀을 읽으며 어떻게 소통하였는지는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 구약을 읽을 때, 이렇게 마무리 했습니다. : “삼위일체에게 영광을!”
왜 이런 구절로 마무리 했을까요? 왜냐하면 구약에서는 성령님이 아직 드러나지 않으셨기 때문에 마치 그분들은 특별한 기름 부으심 아래서 하나님 인격의 충만한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구약의 저자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 복음서를 읽을 때, 이렇게 마무리 했습니다. : “하나님께 영광을!”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 바울 서신서를 읽을 때, 이렇게 마무리 했습니다. : “성부 아버지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 신약의 다른 서신서를 읽을 때, 이렇게 마무리 했습니다. : “ 세상이나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세상도 지나가고 정욕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 묶인 자는 영원하다!” 왜냐하면 서신서들의 주된 내용이 올바른 크리스천의 행동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도행전을 읽을 때면 이렇게 마무리 했습니다. : “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성장, 증식되며 힘을 얻고 확증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일하심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계시록을 읽을 때면 이렇게 마무리 했습니다. : “귀 있는 자는 누구든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을 들으라!”

5)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야기 읽기
아브라함, 모세, 바울 등의 삶
여기서의 목적은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름 부으심과 축복에서 영감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 창세기 12‐24 –> 믿음의 삶
모세: 출애굽기1‐24 –> 그의 백성을 향한 관심과 열성
다윗: 사무엘상 16‐ 사무엘하 –> 예배자, 하나님의 사람의 클래식 그림
엘리야 : 열왕기상 17 ‐ 열왕기하 –> 불

6) 예수님 바라보기 –> 그리스도의 신비가 열림
– 그분들은 신약을 매주 읽었습니다!
– 그분들은 예수님의 발자국을 어떻게 따라가는지 배웠습니다.(때로는 장의 일부 혹은 많은 장들) –>예수님과 하루를 사는 것을 배웠습니다.
– 다른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보기 위해서
– 예수님의 삶이 자신들의 삶 안에 프린트되고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 그분의 이야기를 읽고 기도하고 흡수했습니다.

7)  사람을 먹이기 위한 영적 음식으로 말씀 읽기
이것은 생각을 지나서 영적인 배 안에 저장되도록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또한 에스겔 3:2-3, 요한계시록10:9-10

8) 소리 내어 읽기(낮은 톤으로 천천히)
이에 대한 생각과 목적은 무엇일까요?

– 2가지 주요 생각

가) 영적인 감각들을 일깨우기. 그분들은 우리가 시각이나 청각, 미각 등을 사용하는 것처럼 성경을 읽을 때 모든 감각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읽을 때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말씀의 다른 맛들을 영 안에서 맛보는 것입니다.
나) 이에 더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존재와 장소를 정결하고 영적인 권위를 증가시킵니다.  입 밖에 낸 말에는 그 안에 권위가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말의 힘으로 사람을 구별하셨습니다.

느헤미야 9: 3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

역대하34: 30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노소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디모데전서 4: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9) 하나님의 호흡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감동 = 호흡)  감동 –> 우리 안에 신성한 생명이 풀어짐 / 하나님의 생명이 전달됨

10)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당신을 돕기 위해 가까이 계신다는 자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어떤 방식으로 도우시는가?
– 그 분은 목격자입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들을 직접 목격하시고 이끄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거기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 목격자로서 그 분은 나를 성령 안에서 어떤 장소와 어떤 사건의 시간대로 이끌어 그 가운데 두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보고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1) 하나님의 말씀에 실제로 잠기기
– 오랜 시간 동안 성경(신 구약의 여러 책들) 읽기. 잘 알려진 경험인 철야(visil night)는 해가 지는 시간으로부터 해가 뜨는 시간까지 12시간 동안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 초대교회 아버지들은 우리가 세상에 잠겨서 많은 더러운 것들이 삶을 휩쓸고 있기 때문에 반대로 씻기고 빛을 받고 살아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잠기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더럽히고 생각과 감각을 어둡게 해서 속사람의 죽음을 가져옵니다.)
– 다시 말해,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게 되면 특별한 분량의 분별력이 따라오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지도록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린도전서2:16의 말처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12) 성경을 읽는  가지 단계
직접적: 직접적 이해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의 삶에 적용하기.  이것은 올바른 크리스천 행동의 성경적 기준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깊게: 말씀의 숨겨진 비밀들과 신비들이 열려지기 시작할 때. 이런 성숙하고 단단한 음식은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서 장성하게 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드려집니다.

이 점은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이야기에서 그 예들과 초대교회 예배자들은 어떻게 이것을 이해했는지를 보겠습니다.

1.  삭개오 (누가복음19:1-10)
초대교회 예배자들은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이것이 실제임을 알았습니다.
직접적인 반응은(이해와 적용에 있어서) 잘못한 행동이 있는지 마음을 살피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또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맞이할 때 삭개오의 열정과 겸손함에 주목했지만 더 깊은 다른 의미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삭개오의 키가 작은 것에 대해 이렇게 기도하며 반응했습니다. : “ 네 주님, 제 영의 키는 너무나 작습니다. 제 속사람 가운데 와 주세요.”

2.  예수님의 말씀과 만지심으로 눈을 뜬 소경들:
그분들은 이렇게 기도하며 반응했을 것입니다. “주님, 제 내면의 눈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저에게 분별력을 주시고 당신의 영광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3.  사마리아 여인:
직접적 의미는 명확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예수님을 알도록 이끌셨고 영으로 예배하는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이 이야기에 있는 또 다른 깊이와 신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 5경의 권위만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책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초대 예배자들은 직접적인 사실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 이야기를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 이야기는 혼의 영적인 태도의 단계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다섯 남편은 여전히 구약의 단계에 살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내 혼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와 함께 있는 6번째인 나(예수님 자신을 의미) 또한 너의 남편이 아니다. 너는 나를 구원자로 알고 나와 연합되어야 한다.””

4.  마지막으로, 특별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자리에 내 자신을 두고 동일하게 기도를 할 수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