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로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열망하며 새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향기를 지니고 날마다 살고자 소망하는 사람은 자기를 대항하는 두 가지 힘에 직면하게 됩니다.

1. 외부로부터의 대항: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방해하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

2. 내부로부터의 대항: 인간 내면의 타락한 본성들

이 두 힘은 어둠과 부패를 끊임없이 사람에게 뿜어대는 펌프와 같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세상의 생각과 논리, 방법들을 담고 있는 열린 그릇과 같습니다.  많은 경우 내면의 갈등과 두려움으로 이런 저항에 반응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상황들과 인간적 법칙들 속에 갇힌 포로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어두움과 타락한 본성에서 뿜어내는 부패함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비워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생각을 새롭게 하고 밝혀줄 영적인 빛으로 채워져야 하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고전2:16) 세상의 법과 이 땅 가운데 나그네임을 깨닫게 하는 영원한 생명의 물줄기로 채워져야만 합니다.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 원문에 의하면 “회개”는 “매타노이아(Metanoia)”라는 단어로 쓰여져 있는데, 이것은 한 사람의 생각(mind)이 바뀐다라는 의미입니다. 실질적으로, 어두움과 부패함을 계속 비워가면서 동시에 영원한 생명과 빛으로 자신을 새롭게 채우는 지속적인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 안에 살며시 들어온 깨끗하지 않는 동기나 죄들을 살피면서 스스로에 대한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23-24)”
그렇게 할 수록, 우리는 은혜 안에서 더욱 성숙하게 되며 영적인 걸음을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게 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외부적인 상황이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나를 용서해 주세요 주님. 내가 어떤 어떤 사람을 아프게 했고, 잘못된 방식으로 행동했고, 기도를 소홀히 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단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내면에 숨어있는 동기들과 잘못된 상황들에 대한 내적인 반응을 (사람은 볼 수 없지만 성령님은 보시고 정결케 하기를 원하시는 내면의 숨겨진 반응) 살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점검하며 외적으로 예의 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내면의 동기를 아십니다. 이런 동기들은 그분의 빛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결함을 소망하며 성령님이 우리의 내면을 씻으시도록 내어드리고 순복할 때 정결해 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결함은 우리의 삶의 영역으로 계속 확장되어 갑니다: 죄에 대해서만 아니라 숨겨진 허물과 실수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됩니다“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편 19:12)

만약 한 사람이 세상과 내적 타락으로부터 자신을 비우는 과정들에서 성공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채우심을 받게 됩니다: “그 넓이 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3:19)”
이 채우심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요 3:34)”

우리는 영적인 삶에 있어 실제로 매일 회개하는 습관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매일 하루의 끝에 특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자신을 돌아 보고 점검하며 성령님에게 우리 내면의 상태를 조명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자기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다른 사람을 원망함 없이 그분의 음성과 깨닫게 하심에 귀 기울어야 합니다. 동시에 죄책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에 우리 자신을 내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들에는 어떤 유익도 없고 오히려 그 안에 우리를 가두어서 앞으로 전진하여 나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회개함에 있어서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즉각적으로 털어내는 것을 배워야 하고 또한 실질적 교정의 단계들, 예를 들어 어떤 상황을 특별한 방법으로 고치기를 원하시거나 사과하기를 원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회개는 생명과 거룩한 고집,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역동적인 행동입니다. 또한 거룩한 두려움, 떨림과 거룩한 열정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회개를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슬픔과 감정적 반응으로 뒤섞어버렸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바울이 쓴 귀중한 구절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고후7:11-12)”

만일 누구든지 주님 앞에서 겸손한 영으로 이 진리와 긍정적인 회개를 매일 관철해 나간다면, 영적인 민감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열린 회개의 샘을 가지게 되어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부어질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회개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는 정해진 시간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회개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죄를 지을 때마다 깨닫게 하는 마음(heart), 즉 다윗의 마음과 같은 부드럽고 민감한 마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잘랐을 때, 그의 마음은 즉각 찔림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다윗 자신에게 행했던 모든 일들에 비하며 지극히 사소한 행위에 불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호와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향해 큰 잘못을 한 것으로 느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자가 됨이니라 하고 (삼상 24:5,6).”  다윗은 민감하고, 부드럽고, 겸손한 그리고 통회하는 마음(heart)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반응했던 것입니다.
만일 회개가 올바른 방법으로 끝나지 않게 되면 심각하고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는 다윗과 솔로몬의 삶에서 명백이 나타납니다.

다윗이 간음 한 후 우리아를 죽이는 죄를 범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가 대면하여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라고 즉시 대답하자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삼하 12:13)” 라고 응답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죄를 회개하자마자 용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용서의 말씀에 이어 다음과 같은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삼하 12:14)”  뿐만 아니라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 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삼하 12:9-12).”

따라서 회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 죄의 고백을 통한 회개와 간구할 때 주어지는 즉각적인 용서

2. 죄의 결과와 결실을 다룸: 이는 동산에서 아담에게 일어났던 일처럼, 그리고 위에 언급된 다윗과 이스라엘 왕국의 이야기에서처럼 죄로 인해 우리가 책임져야 할 땅에 생겨난 가시와 엉겅퀴를 다루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에 나타난 그의 죄의 결과는:

– 간음으로 얻은 아들의 죽음

– 다윗의 가정에서 동일한 죄가 일어남: 암논과 다말의 이야기

– 아버지를 대항하는 압살롬의 반역: 이스라엘에서 도망치는 다윗, 다윗과 그의 아들 압살롬 사이의 전쟁

– 이스라엘의 분열과 영적 태만: 그리고 결과적으로 인구조사와 이스라엘을 치시는 여호와

이 모든 죄의 결과를 다루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고통과 상실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완전한 회개를 이루었습니다.
첫째, 그는 즉각적이고 신속한 죄의 회개를 통해 영적인 책임을 다했고 선지자를 통해 주님의 용서가 선포되었음을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죄를 사하셨노라.”  그리고 나서, 죄로 인해 그의 왕국과 가정, 그의 땅에 생겨난 가시와 엉겅퀴를 다루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여호와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었습니다. 아들이 죽기 전까지 금식하며 밤새 땅에 엎드렸습니다(삼하 12:16).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 중에 시므이가 저주했을 때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로 나를 저주하게 내버려 두라…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살펴주시리라. (삼하 16:10,12)”
마침내 그는 다시 돌아와서 왕국을 재건합니다. – 인구 조사로 인해 주님이 이스라엘을 치심으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춘 이후였습니다(대상 21-27). 그리고 그는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를 한 후 그 임무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앞에서 아들 솔로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대상 28,29).

회개의 두 측면, 즉 영적 측면(the spiritual aspects)과 왕국의 측면(the kingdom aspects)이 다윗의 회개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다윗이 용서함을 받게 되고 따라서 이스라엘 왕국도 고침을 받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짓기 위해 필요한 준비가 가장 잘 된 상태에서 그 임무를 아들 솔로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의 아들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성전 건축을 즉시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 또한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와 명예와 지혜로 축복하시고 모든 나라들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지만 그의 마음(heart)을 이방여인에게 빼앗겨서 여호와와 그의 성전, 말씀들로부터 돌아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일에 관해 두번이나 경고하셨음에도 말입니다. (왕상 11:1-11)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솔로몬은 자신의 회개를 온전히 이루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땅과 가정 그리고 왕국에 덮인 가시와 엉겅퀴를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왕국은 파멸에 이르렀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림대로 계속 될 수 없었습니다. 왕국은 분열되었고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그런 상태가 지속 되었습니다. 또한 부패함이 점차 남쪽과 북쪽의 왕국에 확산되었고 결국에는 양쪽 모두 완전한 포로로 사로잡혔습니다. (왕하17)
성령님의 계시를 통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감찰하시는 빛 아래로 자신을 내어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는 대신에 철저하게 자신을 드러내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찰하시는 빛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선호하는 회개의 방식들이 있습니다. 옛사람이 드러나는 것을 받아 드리며 정결함을 입고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채워지기 위해 우리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있습니까?  어디서든, 어느 때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성령님께 귀를 기울이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늘 깨어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내면의 깊이와 동기들을 드러내는 유일하신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끊임없이 인내로 구합시다.

매일의 회개를 주님께 올려 드립시다. 회개는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생각(mind)과 마음(heart)을 변화시키며 교만, 이기심, 어두움, 숨겨진 내면의 부패함과 비뚤어진 마음을 드러내는 통찰력을 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우리의 내적 순결함을 향한 지속적이고 신실한 회개의 여정입니다.  이러한 여정의 열매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요. ( 마5:8)”